이재용, 日서 귀국 다음날 비상계획 지시

김현수 기자

입력 2019-07-15 03:00 수정 2019-07-1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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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디스플레이 사장단 소집… 주말 4시간 넘게 日수출규제 논의
백색국가 제외 대비한 대책 주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13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사장단을 긴급 소집해 대책회의를 했다. 5박 6일의 일본 출장 기간에 느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전사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토요일인 13일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사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과 함께 일본 수출 규제 현안을 논의했다. 전날 오후 8시 50분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안 돼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이날 회의는 4시간 이상 이어지며 ‘비상상황’ ‘비상경영’ 등 위기감을 반영한 논의가 주로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특별히 백색국가 제외 등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 마련을 주문했다. 반도체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TV 등 삼성전자가 만드는 전 제품에 미칠 파장을 점검하고 철저히 대비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한국이 일본 정부가 전략물자의 수출 허가를 면해 주는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한국은 전자, 통신, 소재, 로봇, 기계 등 거의 전 산업 영역의 공급망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 부회장은 회의에서 “단기 현안 대처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의 큰 흐름을 파악할 안목을 길러야 한다.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는 한편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자”고 강조했다. 또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핵심 소재 다변화와 국내 소재산업 육성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재용 “모든 제품 영향 점검”… 사태 장기화 대비 나서 ▼

규제 3대 품목 일부 물량 확보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토요일에 사장단을 소집해 컨틴전시 플랜을 주문한 것은 그만큼 일본 출장에서 위기 상황을 감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지 사흘 만인 7일, 편도 티켓으로 급하게 일본으로 향했고, 일정도 유동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가급적 많은 일본 정·재계 고위 인사와 접촉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 부회장이 출장 기간 동안 미쓰비시UFJ, 미쓰이 스미토모, 미즈호 금융그룹 등 일본 3대 메가뱅크(대형 은행) 간부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은 7월에 투자자 대상 기업 설명회 등 금융계와 기업 간 왕래가 잦다. 이 부회장이 이를 활용해 일본 정·재계에 정통한 금융계 고위 인사를 만나 사태 파악과 대안 모색을 하고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면담 과정에서 일본 수출 규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감지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 DS 사업부가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3대 품목에 대해 일정 물량을 확보했다고 보고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한 달 정도 재고 분량에서 얼마간 더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삭줍기식 물량 확보로 장기전에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컨티전시 플랜 주문은 삼성이 그만큼 초유의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은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 외에도 미중 무역분쟁, 업황 부진으로 인한 실적 악화, 삼성 바이오로직스 수사 확대로 인한 리더십 공백 등이 겹친 상태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에도 주말에 반도체 사장단을 긴급 소집해 비상경영에 나선 바 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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