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재무성-외무성 제친 경제산업성, 아베 전위부대로 ‘韓 정밀타격’ 독주

도쿄=박형준 특파원

입력 2019-07-09 03:00:00 수정 2019-07-0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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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제보복 파문]최고 실세부처 경산성 역할 주목

올해 1월 말. 일본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 재무성 간부 등이 모여 긴급회의를 했다. 한국 법원이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 압류를 승인한 데다 일본이 한국 해군 함정의 레이더 조사(照射·겨냥해 비춤)를 주장하면서 한일 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아베 총리가 한국 제품에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언급했다. 고노 외상도 ‘트럼프 방식으로 가자’며 거들었다. 이에 재무성 간부가 “특정 국가에 대해 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올리는 법률이 일본에는 없어 힘들다”고 답하면서 이 방안은 흐지부지됐다.

일본 외교 소식통은 8일 본보에 당시 상황을 전하며 “빈틈을 찾아낸 게 경제산업성(경산성)이었다. 관세를 올리는 대신 한국이 가장 아파하는 특정 제품 수출을 정밀 타격하는 방안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정권에선 경산성이 최고의 실세 부처”라고 설명했다. 과거 가장 힘 있는 부처는 재무성이었다. 외교를 맡는 외무성도 핵심 부처지만 아베 정권 아래에서 ‘넘버1’ 자리는 경산성으로 넘어갔다.

경산성의 힘은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61) 정무비서관에서 시작된다는 게 관가의 분석이다. 총리 관저 비서관 6명 중 톱인 그는 아베 총리와 ‘일심동체’인 인물로 꼽힌다. 1982년 통상산업성(현 경산성)에 들어온 이마이 비서관은 2006년 1차 아베 내각 때 총리비서관을 지냈다가 아베 총리가 1년 만에 물러나자 경산성으로 복귀했다. 그 후에도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아베 총리가 2012년 말 두 번째로 총리에 오르자 그는 정무비서관으로 복귀하며 아베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경산성 후배들을 관저 주위에 포진시켰다. 2차 아베 정권에서 총리의 스피치 라이터였던 사이키 고조(佐伯耕三·42) 총리비서관은 이마이 비서관의 추천으로 2017년 최연소 총리비서관이 됐다. 하세가와 에이이치(長谷川榮一·67) 내각홍보관도 관저에 합류했다. 일본 언론은 ‘경산성 내각’이라고 표현한다.

성장 전략을 주도하는 경산성의 독주는 아베 총리가 2012년 말 금융완화, 재정지출, 성장전략 등 소위 ‘3개의 화살’을 쐈을 때부터 예견됐다. 재무성은 보수적이고 재정 안정을 중시했지만 경산성은 “일단 투자부터 하라”며 혁신적인 투자 정책을 주도했다. 아베 총리가 외치는 ‘속도감’과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경산성의 독주는 외교 분야에서 폐해를 낳았다. 경산성이 외무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진행한 이번 수출 규제 강화 조치는 일본 내부뿐 아니라 해외의 비판을 받고 있다.

러시아와의 영토 교섭도 실패작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1956년 이뤄진 ‘일소 공동선언’에 기초해 평화조약 체결을 서두르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4개 섬 중 시코탄, 하보마이 등 2개 섬을 지난달 말에 끝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까지 반환받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외교 소식통은 “외무성 내 러시안 스쿨은 푸틴 대통령 성향상 99% 영토를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경산성이 주도하면서 업무에서 배제된 외무성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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