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들 연일 금리인하 압박… 독립성 위협 받는 중앙은행들

조유라 기자

입력 2019-07-09 03:00 수정 2019-07-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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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에 각국 중앙은행 수난


미국, 터키, 인도 등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최고 권력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부분 권위주의적 지도자 ‘스트롱맨’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나라들이며 중앙은행장 교체도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 기자들에게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았다면 다우지수는 현재보다 5000∼1만 포인트 더 높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주 트위터에 “연준은 아무것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라고 했고, 지난달 26일에는 “연준의 통화정책은 제정신이 아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본인이 직접 임명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66)이 금리 인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해임을 추진했지만 법적 논란을 의식해 철회했다. 이달 2일에는 자신의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주디 셸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상임이사를 공석인 연준 이사 후보로 지명했다. 셸턴 지명자는 대통령을 의식한 듯 최근 “이사로 공식 임명되면 1, 2년 안에 미 기준금리를 0%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압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판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6일 무라트 체틴카야 중앙은행 총재(43)를 해임하고 무라트 우이살 부총재(48)를 그 자리에 앉혔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등으로 현 집권당은 지난달 최대 도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앙은행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고 금리를 내리지 않은 것이 선거 패배의 주요 이유라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터키 경제가 취약하고 리라화 가치가 연일 하락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낮추면 추가 혼란이 우려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르지트 파텔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56)도 임기 만료 9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돌연 사퇴했다. 파텔 전 총재 역시 경기부양책을 주문한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와 내내 갈등을 빚었다. 새 총재는 친(親)모디파 관료로 유명한 샤크티칸타 다스 전 내무장관(62)이다. 2016년 모디 정부의 화폐 개혁을 주도했던 그로 인해 중앙은행이 ‘행정부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영국 BBC는 파텔 전 총재의 사퇴가 모디 총리에 대한 ‘저항’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이 줄곧 위안화 가치의 인위적 절하를 문제 삼고 있는 중국 런민은행도 독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아예 ‘런민은행의 진짜 수장은 이강(易鋼) 총재가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런민은행장인 시 주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할 수 있다”며 파월 의장을 마음대로 해임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했다.

최고 권력자들의 거센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의 독립성만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리를 내린다고 무조건 경기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자국통화 하락, 물가 상승 등 후폭풍도 만만찮아 함부로 쓸 카드가 아니라는 의미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 인하를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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