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정년 29세]‘서른 즈음에’ 취업 막차 놓치면 ‘알바 인생’

뉴스1

입력 2019-07-08 11:18 수정 2019-07-0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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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면접을 앞두고 있는 취업준비생들. 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나이 든 신입사원을 기피하는 기업의 채용문화는 청년실업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청년 실업자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지만 그들을 재기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는 것은 한 사회의 제도와 문화가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20대 취업에 실패하면 그 이후로는 취업 문이 닫힌다는 통념이 있다. 이는 일본 ‘잃어버린 20년’ 시대의 ‘아라포’(40세 전후)세대처럼 취업 적령기를 놓쳐 영영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세대를 양산하는 장기적 폐해를 만든다.

◇‘마지노선’ 넘기면 평생 낙오자

취업 연령에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일정한 나이에 취업에 실패하면 비정규직·비전문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연봉상승이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을 꿈꿀 수 없다. 이에 따라 결혼·육아에서도 멀어진다. 1~2년 차이로 취업 연령을 놓치면 평생 불안정한 삶의 굴레에 빠지는 것이다.

최악의 청년실업 세대로 기록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세대’에서 이같은 현상이 많이 관찰됐다. ‘아라포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고용 절벽이 시작된 1990년 전후에 취업전선에 내몰려 결국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40대가 된 세대를 뜻한다.

이들은 아르바이트(알바)를 전전하느라 주변 세대에 비해 소득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미혼자 비율도 높은 것이 특징이다.

‘신입 나이’ 상한선을 정한 일본의 공채제도가 이같은 비극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채용 관행이 비슷한 우리나라에서도 청년실업이 곧 또 다른 ‘아라포’를 키울 위험이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암묵적으로 나이 상한선이 있어 28~29세쯤에 마지노선이 형성돼 있다”며 “연령 상한을 없애려면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도입할 뿐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자리에 뽑아서 쓰도록 그룹 공채 제도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청년특별법 적용대상을 30세 미만에서 35세로 확대하는 등 공공실업 대책은 마련됐으나 문제는 정작 취업할 곳에서 나이 먹은 사람을 안 받는다”며 “그렇게 (청년 실업자가) ‘잃어버린 세대’, ‘낀 세대’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령 블라인드’ 제도 도입 필요

영국·미국 등 선진국처럼 이력서에 나이 기재를 금지하는 ‘블라인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청년실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평생 낙오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취업 정보 사이트 ‘시브이플라자(CVPlaza)’는 이력서 쓰는 법을 소개하는 게시글에서 이 법을 언급하며 “이력서에 생년월일이나 나이를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이를 근거로 채용상 차별을 두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근거지를 두고 영국·미국 등지에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링크드인(Linkedin)’도 “과거에는 이력서에 생년월일이나 나이를 기재하는 게 당연했다”며 “(입법 후) 지금은 대부분이 이력서에 나이를 기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영국에서 3년간 유학 생활을 한 진모씨(28)는 “영국 학교에서는 ‘이력서에 나이를 쓰게 하는 건 불법’이라고 교육한다”며 “한국과 달리 졸업·취직·결혼을 몇 살에 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분위기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1967년 연령을 근거로 고용상 차별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연방법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법(ADEA)’을 제정했다. 이 법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을 금지할 뿐 아니라 이력서에 나이를 기재하는 것도 금지한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력서에 나이를 적지 않거나 나이를 적는 칸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버클리대 홈페이지에서 졸업생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커리어 센터’ 페이지는 “미국에서는 이력서에 나이·성별·재산 등을 적어서는 안 된다”고 안내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용모·키·지역 등에 대한 개인정보를 이력서에 기재할 수 없도록 하는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의결된 바 있으나 여전히 ‘나이’에 대한 규정은 빠졌다. 대부분의 민간기업에서 이력서에 주민등록번호나 나이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취업 연령 상한선이 암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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