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관측 기술로 암세포 찾아낸다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9-07-05 03:00 수정 2019-07-05 03:00
천문위성 기술 응용한 적외선체온계 적외선체온계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가 개발한 적외선천문위성(IRAS) 기술을 응용해 제작됐다. 귓속 고막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감지해 체온을 측정한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 제공
천문학자들이 별과 성운을 관측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엑서터대 연구팀은 별과 행성이 탄생하는 과정을 관측하는 기술을 이용해 유방암 피부암을 조기 진단하는 데 성공했다고 3일(현지 시간) 영국천문학회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다. 연구팀은 유방암 발생 초기에 유방조직에 칼슘 침전물이 생긴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칼슘 침전물에 빛을 쬐이자 파장이 미세하게 변했다. 연구팀은 천문학자들이 별 탄생을 연구할 때 주변 먼지나 가스가 내는 빛을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실제 유방조직에서 암 발생 초기에 나타나는 미세한 칼슘 침전물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환자의 생체조직을 떼어내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도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는 데 이 기술이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찰리 제인스 연구원은 “천문학 등 기초과학 연구는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며 “의학 분야에서 진단이나 치료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천문학을 위한 기술이 의학에 활용된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천체 관측이나 심우주 탐사를 위해 개발된 기술 가운데는 이미 의료에 활용되는 기술이 있다.
환자 귀에 넣어 몸의 미세한 체온 변화를 측정하는 적외선 온도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적외선 온도계는 198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가 개발해 지상 900km 궤도에 띄웠던 적외선천문위성(IRAS)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IRAS는 수백 m 떨어진 곳의 먼지가 내는 적외선까지 감지할 정도로 민감하다. 미국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다이아텍은 이 기술을 응용해 귓속 고막이 내는 적외선을 감지해 체온을 재는 적외선 온도계를 개발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식물을 키우기 위해 개발한 발광다이오드(LED)는 골수이식 환자의 90%에게서 나타나는 구강 통증과 위장관 점막염 통증을 완화하는 데 쓰인다. NASA 마셜우주비행센터 전문가들은 LED 빛을 쬐인 세포가 150∼200%나 빠르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치료용 LED를 개발했다. 매일 1분 이상 구강을 비추는 임상시험 결과 골수이식 환자의 점막염 발생을 절반가량 줄였다.
미국 로봇 제조업체인 ‘인바이런멘털로봇’은 NASA에서 개발한 거품(폼) 형태의 인공근육 재료(템퍼폼)를 의족과 의수 등에 적용했다. 의족과 피부 사이에 넣어 외부 충격을 완화하고 열이나 습기, 마찰을 줄였다.
암 조직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찾아 우주에서 미생물을 검사하기 위해 개발한 장비로 유전정보를 분석하거나 지구보다 중력이 훨씬 작은 미세중력 환경을 구현하는 장비 내에서 세포를 관찰해 유전자 변이나 질병 원인, 발병 과정을 연구하기도 한다.
거꾸로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기술을 천문학에 활용한 사례도 있다. 2009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지금으로부터 약 330년 전에 초신성이 됐을 것으로 보이는 카시오페이아자리 A의 3차원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미국 보스턴브리검여성병원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3차원(3D) 슬라이서’를 활용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뇌수술을 앞둔 환자의 두뇌를 스캔한 뒤 3차원상에서 수술 계획을 미리 세우기 위해 개발됐다. 연구팀은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카시오페이아자리 A가 커다란 공 모양이지만 내부에 디스크처럼 편평한 부분이 있으며 별이 폭발해 초신성이 되는 과정에서 나온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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