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제한 조치 WTO 위반일까…전문가들 “쉽지 않은 싸움”

뉴스1

입력 2019-07-03 14:41 수정 2019-07-0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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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양국 간 통상 갈등이 격화할 분위기다. 정부는 일본의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WTO에 제소하기로 했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는 GATT 제11조, 수출·입 과정에서 수량 제한 금지 조항을 들어 한일간 특정 품목의 수출입이 제한된다면 규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포괄 수출 허가신청이 면제되는 ‘화이트(백색) 국가’ 제외 여부는 일본의 고유권한이다. 특히 이 조치는 직접적인 수량 제한이 아니라는 점에서 WTO 협정 위반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일본이 발표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 제한 조치를 WTO 규정 위반으로 보고 WTO 제소에 앞서 본격적인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고 3일 밝혔다.

김승호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이날 “현재로선 일본이 제한 조치 발표만 있었고 시행 전 시점이어서 실제 시행 내용과 과거 판례 등을 모두 따져 검토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법률검토 작업이 1~2달이 걸릴지 반년, 1년이 걸릴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WTO 분쟁 때 준용할 WTO 위배 조항 등에 대해 김승호 실장은 말을 아꼈다. 그는 “전투에 나서는 상황에서 작전을 물어보는 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수출입 물량 제한 금지 규정(GATT 제11조)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GATT 제11조는 수출·입 과정에서 수량을 제한하면 시장 가격 기능이 정지되고, 관세보다 쉽게 무역 제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안보 등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이틀 전 반도체와 OLED 제조 등에 사용되는 ‘리지스트’, ‘에칭 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소재 품목에 수출 절차 간소화 등 한국에 부여했던 우대조치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이들 3개 품목에 대해서는 계약 건별로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로 인해 허가 신청과 심사까지 90일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허가·심사를 빌미로 사실상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자체가 당장 수량 제한을 금지한 ‘GATT 제11조’ 규정 위반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르지만 만약 허가가 나지 않아 실제로 수출이 제한된다면 규정 위반이 될 수 있다.

이 규정 말고도 우리 측이 준용할 수 있는 WTO 위배 조항으로는 모든 국가에 동일한 혜택을 부여하는 최혜국대우(MFN) 원칙을 명시한 ‘GATT 1조’가 있다.

한국에 허가 신청·심사 등 복잡한 절차를 요구한 일본의 조치가 실제 수출이 제한되지 않더라도 MFN 원칙 위반으로 간주될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수출상황점검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2019.7.1/뉴스1 © News1

반면 일본 측은 자국의 조치가 WTO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과 관련해 “WTO 규칙에 맞다. 자유무역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이 발언에 이어 “국가(일본)와 국가(한국)의 신뢰관례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다”라며 한국이 먼저 신뢰를 깼기에 일본도 수출 규제에 나섰다는 논리를 폈다.

이 신뢰관계란 것이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염두에 뒀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WTO 제소의 길을 걷더라도 우리 측 승산이 크지는 않다고 얘기한다.

우선 일본이 취하기로 한 첨단재료 등에 대한 포괄 수출 허가신청이 면제되는 외국환관리법상 우대제도인 ‘화이트(백색) 국가’ 제외 여부는 일본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이 우리 측에 ‘수입 허가·심사’ 등을 받도록 한 조치가 실질적으로 무역에 영향을 미쳤거나 미칠 우려가 있어야 하는데 수입을 아예 막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다.

일본이 충분한 법률 검토 등을 거쳐 WTO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은 범주로 교묘하게 금수조치를 운용하면서 우리 측에 경제 보복을 단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본이 실제 금수 조치를 단행한 게 아니어서 현 시점에선 WTO 규정 위배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분명한 것은 일본이 기냐 아니냐 판단이 어려운 ‘회색지대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WTO 제소 자체가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WTO 분쟁 결과가 나오려면 법률 검토부터 분쟁해결기구(DSB) 패널 판정(1심), 상소기구 판정(최종심)까지 2~3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가 승소한 미국과의 유정용 강관,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등 두 사례 모두 3년 이상 걸렸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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