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그날까지… 장애인 복지-권리 증진 ‘밀알’이 되다

황태훈 기자

입력 2019-06-26 03:00 수정 2019-06-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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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복지재단
내달 15일 창립 26주년 맞아, 16년째 매년 6월 밀알콘서트 열어
장애인 생애주기별 서비스로 호평… 일자리 제공하는 자립생활에 주력
굿윌스토어-기빙플러스 지점 확대


밀알복지재단 직원이 미얀마에서 현지 어린이를 돌보며 활짝 웃고 있다. 재단은 의료사 각지대에 놓인 개발도상국에 선진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이석희 씨(45)는 어릴 때부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동하는 게 어려웠다. 뇌 손상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돼 전동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뇌병변 장애 때문이었다. 이 씨에게 문화생활은 먼 나라 얘기였다. 공연이 보고 싶어도 몸이 불편한 탓에 TV에서나 지켜볼 뿐이었다. 어렵게 공연장에 가더라도 그를 도와줄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데다 휠체어를 놓을 수 있는 좌석을 찾기 어려워 돌아선 적도 있었다.

이 씨는 요즘 매년 6월을 기다린다. 밀알복지재단이 16년째 진행하고 있는 밀알콘서트가 있어서다. 올해도 6월 13일 서울 세종대에서 열린 밀알콘서트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동안 참아왔던 공연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밀알콘서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며 즐기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 씨는 “평소 공공장소에 가면 장애인으로 소외감을 느끼곤 했는데 밀알콘서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자리여서 좋았다”며 “앞으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런 공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밀알콘서트의 시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허름한 사무실에서 대학생과 직장인 등 20, 30대로 구성된 7명이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깨기 위한 작은 단체를 만들었다. 밀알복지재단의 전신인 ‘한국밀알선교단’이었다.

7월 15일은 밀알복지재단이 창립한 지 26주년 되는 날이다. 재단은 1993년 장애인에게 보다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국밀알선교단에서 분리됐고, 이제는 국내 최고의 장애인 복지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밀알복지재단은 그동안 장애인과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를 마련했다. 특히 장애인 생애주기별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해 호평을 받고 있다. 장애아동 수술비 지원을 비롯해 △장애·비장애 아동이 함께 자라는 장애통합어린이집 △발달장애아 특수학교 △청장년기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장애인 근로사업장 △장애인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장애인 보호시설 △장애인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등이 대표적인 사업들이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토대 마련

밀알복지재단이 특히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장애인의 자립 생활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 일자리 사업인 굿윌스토어와 기빙플러스 지점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굿윌스토어는 재활용품 판매장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물품을 기증받아 판매한 수익으로 중증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장애인 근로자들은 기증받은 물품들을 손질해 상품화하고 매장에서 판매하는 일을 맡는다. 급여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시급 형태로 받는다. 굿윌스토어는 근로 장애인 중심으로 업무가 배정돼 장애인 사이에서 ‘꿈의 직장’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현재 재단이 운영하는 굿윌스토어 7개 지점에서 190여 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 전문 스토어인 기빙플러스는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을 고용해 자립을 돕고 있다. 기업들로부터 재고상품이나 이월상품을 기부받아 판매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금으로 장애인이나 다문화가정을 고용한다. 기업들은 기부한 상품에 세금공제 혜택을 받는다. 현재 기빙플러스에 참여한 기업은 200곳이 넘는다. 기빙플러스는 4월 오픈한 가락시장역점을 시작으로 올해 모두 5곳을 추가로 문을 열 예정이다.

장애인 복지 노하우, 해외 개발도상국에 전파

밀알복지재단은 장애인 복지 초창기부터 쌓아온 전문성과 노하우를 해외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고 있다. 의료 사각지대였던 마다가스카르 오지 주민들을 위해 이동진료사업을 벌였고 초등학교를 설립해 빈곤 아동의 교육을 도왔다. 또 해외 17개 나라의 전기시설이 없는 오지에 태양광 랜턴을 전달하는 등 국제 개발 협력 사업에도 힘을 싣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이 2011년 발간한 세계장애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장애인의 3분의 2 이상이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다. 장애가 있는 어린이의 5%만이 초등학교를 마치고(유엔아동기금·UNICEF), 장애인의 절반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WHO)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개발도상국 장애인들은 낮은 사회적 인식과 관련 시설 부족으로 교육, 노동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케냐, 말라위, 필리핀, 라이베리아, 네팔 등에서 특수학교와 직업재활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생애주기별 장애 통합 자립복지 글로컬(Glocal·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 모델 구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현지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복지 수준을 한 단계 이상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업이 필리핀 장애인 직업재활사업인 ‘두나마이(Dunamai·그리스어로 할 수 있다는 뜻)’다. 밀알복지재단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필리핀 장애인의 직업재활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을 마친 학생들이 직업훈련을 할 수 있도록 두나마이 카페와 식당, 미용실 등도 운영했다. 직업 훈련을 이수한 일부 장애인은 취업에 성공했다. 두나마이는 필리핀에서 직업재활 모델로 인정받으며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현지 언론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 장애인 돕기에 앞장

그동안의 노력으로 장애인 복지 수준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은 많다. 특히 시각과 청각을 함께 상실한 시청각장애인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들을 돕는 제도나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밀알복지재단은 이런 사정을 감안해 시청각장애인 권리 보장을 올해 주요 역점사업으로 선정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선 올해 4월 시청각장애인 지원센터인 ‘헬렌켈러센터’를 개설하고 시청각장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헬렌켈러법’ 제정 촉구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헬렌켈러법안은 시청각장애인의 특성과 복지 요구에 맞는 지원 방안을 담은 법률안이다. 올해 2월 이명수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발의했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밀알복지재단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헬렌켈러법 지지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된 서류는 국회에 전달해 법 제정을 촉구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는 “앞으로도 신뢰, 선도, 협력이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복지와 권리 증진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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