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3000억 손실” 한전, 배임논란 부담

세종=송충현 기자

입력 2019-06-22 03:00 수정 2019-06-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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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누진제 완화’ 의결 보류… 사외이사 우려 목소리 특히 높아
내달 전기료 인하 늦춰질 수도


한국전력공사 이사회가 21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의결을 보류한 이유는 이사회 내부에서 배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예상과 달리 한전 이사회가 결정을 보류하자 긴급회의를 여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7월부터 시작하려던 여름철 전기료 인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1일 한전에 따르면 이날 이사회는 배임 여부에 대해 로펌에 문의한 법률해석 결과를 공유한 뒤 회의에 임했다. 일반적으로 오전에 열리는 이사회는 상정안건을 처리한 뒤 점심 전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날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한 채 오후 2시 30분까지 진행됐다.

한전 이사회는 김종갑 한전 사장 등 상임이사 7명과 김태유 이사회 의장 등 사외이사 8명으로 구성된다. 한전 이사회에 올라간 안건은 이사회 과반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한전 측이 사외이사 중 한 명의 찬성표만 얻어도 누진제 개편안은 통과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사회를 추가로 열어 누진제 개편안을 재논의하기로 한 이유는 배임 소송에 대한 이사들의 우려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 측 인사들은 그래도 누진제 개편안에 찬성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전 별도로 모여 의결 여부를 논의할 정도로 갑론을박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사회 내부에선 배임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정부가 한전이 입을 손해액을 어떻게 보전할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한전은 정부 재정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매년 한전이 손실을 보는 구조의 전기요금 개편안을 의결하면 소액주주들이 준비하는 배임 소송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보고 로펌 2곳에 법률해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결국 이번 사안은 현 정부 들어 적폐청산 과정에서 동원된 배임죄 적용이 역으로 정부 정책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전은 실제로 로펌에 보낸 질의서에서 “최근 대법원의 강원랜드 이사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 비추어 볼 때 요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내리는 방향으로 이사회가 결정하면 소액주주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최근 엄격해진 배임에 대한 잣대에 따라 이사들의 걱정도 커진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사회가 결정을 연기하자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사회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누진제 개편안이 통과되면 지난해처럼 소급 적용해 7, 8월분 전기요금 인하는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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