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상장사에 무리한 요금인하 요구… 결국 세금으로 전기료 깎아줘

세종=송충현 기자

입력 2019-06-20 03:00 수정 2019-06-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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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한전에 예산 700억 지원 방침

정부가 한국전력공사에 7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전한 것은 21일 이사회를 앞둔 한전 이사들의 배임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름철 전기료 인하에 따른 비용 부담을 한전이 떠안은 상태에서 이사회가 진행되면 정부가 이사들의 배임을 야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기업의 실적을 도외시한 채 무리하게 전기요금 인하를 추진하다 결국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자승자박’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19일 한전과 국회 등에 따르면 한전 이사회는 그동안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의 누진제 개편 권고안을 어떤 방식으로 의결할지 고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추진한 전기요금 개편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수천억 원의 손실가 불가피한 결정을 이사회 스스로 내리자니 배임 논란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11일 누진제 공청회에서 “한전이 누진제 개편안을 수용하면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한전이 국내 대형 로펌 2곳에 배임 여부에 대한 법리 해석을 문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전은 “정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여름철 요금을 할인하는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할 경우 배임에 해당하는지 해석해 달라”고 문의했다. 올 1분기(1∼3월)에 6300억 원의 적자를 낸 한전이 매년 손실를 볼 수밖에 없는 전기료 인하 방안을 수용하는 게 정당한지 법률 해석을 의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로펌 측은 한전에 “정부의 지원 여부와 규모에 따라 배임 여부가 갈린다”는 1차 해석을 보내놓은 상태다. 사실상 한전이 모든 비용 부담을 질 경우 배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사를 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당초 비용 보전에 미온적이던 정부가 한전과 지원 규모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배임 논란’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이달 초 누진제 토론회에서 “전기료 할인에 따른 소요 재원은 한전이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 부담할 예정”이라며 “정부는 비용의 일부를 국회와 논의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기업이자 상장사인 한전의 기업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요금 할인이라는 포퓰리즘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전력 사용을 줄이는 쪽으로 유도하는 게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국민이 전기를 더 쓰도록 부추기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며 “전기를 많이 쓰면 에너지 발생비용이 늘고 환경오염이 심화하는데 이런 정책에 공기업 예산이나 정부 예산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이번 전기료 인하 혜택에서 제외된 사용자(626만 가구, 전체의 28%)들이 낸 세금도 한전의 손실 보전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전기 사용량이 적은 계층이다. 누진제 개편이 전기 사용량이 많은 쪽에 유리하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전의 수익 보전을 위해 내년 하반기에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에 월 4000원 한도로 요금을 깎아주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폐지도 추진하기로 해 이들 계층이 받는 불이익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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