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분노와 갈등…甲에게 제대로 따져본 적 있나요?

동아일보

입력 2019-06-18 15:09 수정 2019-06-18 15:19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조명이 들어오고 무대 위에 출근길이 펼쳐진다. 일곱 배우가 전쟁 같은 전철역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모두 자기 이야기로 느끼기 때문이다. 극단 작은 신화가 무대에 올린 연극 ‘돌아오는 화(火), 요일(원작·연출 이흥근)’을 관람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경쟁하느라 지쳐버린 직장인들은 회의에서 ‘만만한’ 직원을 비꼬며 상처를 준다. 회의가 끝나자 공격받은 직원은 또 다른 만만한 직원에게 화풀이를 한다. 이 연극의 기본 구조는 한 사람이 만들어 낸 분노(火)가 어떻게 릴레이 바통을 주고받듯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고 불이 번지듯 퍼지며, 결국 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

회사에서 상처 받은 직원은 커피집 아르바이트생에게 화풀이를 하고, 세차장 사장과 주차 문제를 놓고 싸우고, 저녁에 모처럼 만난 연인에게 화를 내며 날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나를 아프게 했던 말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던진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이전 장면에서 화를 냈던 배우는 무대 한 켠에서 자신이 낸 화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화를 내는지 관찰한다. 집에 오는 길, 직장인의 분노와 갈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조직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하다보면 내부의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조직 컨설턴트로 유명한 패트릭 렌시오니는 “리더는 조직 내부의 갈등을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다양한 의견이 두려움 없이 나올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조직문화의 건강도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카카오는 ‘신충헌’이라는 문화를 갖고 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신뢰가 있는 바탕에서 다양성을 기반으로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며, 그렇게 만들어진 결론에는 모두가 헌신한다는 뜻이다.

갈등이나 다름이 반드시 분노나 짜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갈등이 문제가 되고 조직 문화를 해치는 경우는 언제일까? 첫째, 직책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직원의 의견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해 억누르는 경우다. 나와 다른 의견에 화를 내는 것은 심리적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직책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자신이 상대방의 다른 의견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힘들거나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 이를 공격적으로 표현한다. 얼마 전 TV에 나온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고성을 지르고 화를 내는 사람들은 사실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은 이를 차분하게 말로 반박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감성지능의 관점에서 보면 분노와 같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건강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둘째, 분노가 을(乙)에게만 향하고 갑(甲)의 부당한 행동에는 향하지 않을 때다. 연극에서 분노는 모두 만만한 상대, 즉 갑에서 을로 향한다. 을이 갑의 부당한 행동에 저항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상사가 옳지 않은 지시를 할 때 “저는 의견이 다릅니다”라고 반박을 시도하는가, 아니면 해봐야 소용없다거나 겁을 먹고 알아서 기는 태도를 취하는가. 나 역시 정작 갑에게는 제대로 따져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셋째, 욕처럼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심지어 폭력으로 이어질 때다. 불의나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긍정적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만약 내가 이런 부당한 공격이나 폭력의 희생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기억하는 조언은 이 칼럼에서도 소개했었던 정치 컨설턴트 조셉 나폴리탄의 말이다. ‘화내지 말고 똑같이 갚아주는 것’이다. 그 수단은 공권력에 대한 신고가 될 수도 있고,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흥근 연출가는 “만약에 세상에 모든 일이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온다면 어떨까?”라고 적었다. 돌아오는 것이 어디 짜증뿐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준 도움이나 힘나게 해준 말도 결국 내게 돌아올 것이다. 날이 점점 더워진다. 동료에게 시원한 커피나 따뜻한 말을 건네자. 어떤 결과로 돌아오게 될지 기대하면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