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투성이 車 리콜제도…법·제도 명확하게 개선해야”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입력 2019-06-12 18:35 수정 2019-06-1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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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의원, ‘자동차 리콜 법·제도 개선 토론회’ 주관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자동차 리콜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모호한 기준과 이 기준을 근거로 삼는 불합리한 처벌규정으로 인해 정작 소비자가 장시간 위험에 방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서구)이 주최하고 한국자동차안전학회가 주관한 ‘자동차 리콜 법·제도 개선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는 리콜 관련 법과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토론회 주최 측 관계자는 “리콜 요건을 보다 명확히 하고 강제적 리콜에 대한 처벌규정을 되살리는 등 정부의 합리적인 리콜 관리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동차관리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자동차 제작사의 신속한 리콜 실시를 유도할 수 있는 법 개정으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신속한 구제와 안전보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 모호한 리콜 규정…명확하게 개정해 소비자 불안 해소해야

토론회 발제를 맡은 류병운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법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자동차관리법 제31조 리콜 요건을 꼽았다. 해당 법은 리콜 요건에 대한 기준과 정의가 불명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콜 불이행 시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입법과정에서 실수가 의심된다고 했다. 동시에 법체계 정합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리콜은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있는 경우 시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모호한 기준으로 제작사와 소비자, 관련 부처간 리콜에 대한 심각한 견해차이가 생길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류 교수는 “가령 제작사는 처벌규정에 대한 부담으로 문제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콜을 시행할 수 있고 정부는 결함차종에 대한 피해구제를 전적으로 제작사에 의존할 경우 리콜 조치를 소극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며 소비자들은 정확한 결함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조치됐는지 알지 못한 채 장시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자발적 리콜 안하면 처벌·강제리콜 거부하면 처벌 불가…“입법 실수”

현행 리콜처벌 규정에 대한 개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류 교수는 “현행법상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 규정이 있지만 정부가 내린 강제적 리콜에 대해서는 제작사가 이를 따르지 않더라도 처벌 규정이 없다”며 “법체계 정합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자동차관리법 개정 과정에서의 오류로 이러한 벌칙 조항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제78조 제1호에서 ‘자동차 제작사가 국토교통부 장관의 리콜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지만 개정 과정에서 자발적 리콜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도록 조항이 변경됐다는 설명이다. 류 교수는 이처럼 중요한 개정사항에 대해 국회 논의기록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입법과정상 실수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불명확한 리콜요건을 근거로 형사벌을 적용하고 있고 자발적 리콜에 대한 처벌규정도 입법과정상 실수로 체계정당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미국 등 해외사례에서처럼 리콜 관련 위법사항을 과징금 부과로 통일하고 형사처벌은 정부의 시정명령 위반 시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처럼 위헌적 법이 탄생한 배경에는 처벌을 우선하는 국내 법과 제도 문화에 기인한 것으로 포퓰리즘적 입법을 지양하고 근본적으로 소비자 안전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리콜 관련 정부 권한·기능 강화 필요성 강조…“늑장대처 없애야”

주제 발표 이후 김윤제 성균관대 교수(자동차안전학회 소속)를 좌장으로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와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대표, 박수헌 숙명여대 교수,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윤진환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장, 김을겸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리콜제도 개선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다.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는 “현행법의 자발적 리콜에 대한 형사처벌은 좌형법정주의 위반 등 위헌 요소가 다분하다”며 “모호한 리콜 요건에 형사처벌을 부과하고 있는 현 규정으로는 제작사의 리콜 의무 해태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수 없고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발적 리콜을 처벌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국회 속기록이나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등에도 아무런 기재가 없었다”며 “입법 과오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박수헌 숙명여대 교수는 소비자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작사 자발적 리콜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의 적극적인 자세와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 및 리콜 관련 법 규정 완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리콜 판단에 대한 제재는 민사금전벌로 규정하고 형벌의 부과는 중상해 관련 결함에 대해 정부에 보고의무를 위반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법에 명시된 모호한 요건(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있는 경우, 결함 사실을 안 날부터 지체없이 등)을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며 “시민단체에서 아무리 리콜을 해야 한다고 제기해도 제작사는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발뺌하면 그만이고 무엇이 결함이고 결함을 언제부터 안 날인지가 불명확해 국민 불안과 우려를 키운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을 명확하게 적용해 제작사가 리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구체화된 객관적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특히 국토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청했다. 현재 국토부의 리콜 시정명령은 제작사의 자발적 리콜에 비해 소극적이라고 지적하며 작년 BMW 화재와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권한과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국내에서 이뤄진 리콜 대수는 총 554만335대로 집계됐다. 그중 정부 리콜명령에 의한 강제리콜 대수는 4.3%(23만8384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자발적 리콜 대수는 268만5689대로 전체의 48.5% 비중을 차지했다.

김을겸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 역시 리콜제도 시행과 관련해 국가기관 역할을 강조했다. 김 상무는 “자동차 결함에 대한 신속한 리콜을 통해 소비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기관에 의한 결함조사와 판단, 시정명령 활성화 등 정부 역할 강화가 필수”라며 “미국과 일본, 독일 등 해외는 일정기간 이상 모니터링 사안에 대해 제작사는 신고의무를 가지고 정부는 이에 따라 종합적인 리콜여부를 판단·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제작사의 늑장 리콜시비와 정부 늑장대처 논란을 해소하면서 신속한 결함조사를 가능하게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 “국가간 리콜 관련 정보가 공유되는 상황에서 국내 리콜 사안이 글로벌 리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관련 규정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김상훈 의원은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 국민 생면과 재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리콜제도가 마련되도록 관련 전문가들의 고견을 지속 수렴해 입법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의원은 지난달 법 해석상의 모호함을 제거하고 업체 요청에 의한 국토부장관의 결함판정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자동차관리법을 대표발의 한 바 있다. 제도 신설을 통해 자동차 또는 자동차부품 결함을 신속하게 시정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정부 늑장대응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취지로 발의됐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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