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화장품 속 반짝이는 펄… 아동 노동 착취로 만들어진다고요?

이수종 서울 신연중 교사·환경교육센터 이사

입력 2019-06-12 03:00 수정 2019-06-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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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화장품 운동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화장품 속 반짝이는 펄은 운모라는 광물로 만든다. 주로 인도에서 생산되는데 채굴에 아동들이 동원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요즘 학교에서는 교복과 염색, 화장 자율화 문제로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의견을 수렴해 학교가 자체적으로 결정하라고 합니다. 이에 학교에서는 토론회 형식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학생들이 무조건 교복, 염색, 화장 자율화를 원할 것 같지만 실상 조사를 해보고 토론회를 열면 어느 정도 규제를 원하는 학생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토론회를 지켜보면 반대와 찬성 그리고 적정선을 지키자는 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화장 자율화를 두고 토론한 어느 학교에서는 재미있는 제안을 한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청소년 화장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화장품 성분이 있기 때문이니 어떤 성분이 유해한지 스스로 연구해 보자고 제안한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학생이 참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장래희망이 사회운동가라는 말을 듣고 수긍이 갔습니다.

어떤 현상을 두고 표면적으로 나타난 사실에 몰두하다보면 그 이면의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 학생은 사회를 바꾸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청소년 화장 찬반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죠.

중3 학생들이 졸업앨범 촬영으로 사복을 입고 등교했습니다. 여학생들은 한껏 예쁘게 꾸미고 화장을 하고 왔어요. 여학생들 중에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화장을 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개념 연예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발언하고 실천하는 연예인을 말하죠. 요즘 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연예인이니 이런 분위기에 맞춰 화장 문제도 개념을 가지고 대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화장품 속 반짝이는 펄은 운모라는 광물로 만든다. 주로 인도에서 생산되는데 채굴에 아동들이 동원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반짝이는 펄은 운모로 만듭니다. 운모(mica)의 어원은 라틴어 ‘micare’인데 그 뜻은 ‘반짝 빛나다’입니다. 운모는 얇은 판상의 광물로 표면이 매끈하고 반짝여서 셀로판테이프처럼 생겼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잘 부스러지고 약합니다. 화장품에 사용되는 것은 백운모로 얇은 반투명 판상이어서 피부에 잘 붙고 퍼집니다.

또 굴절률이 작고 투명해 피부에 붙으면 자연 광택을 냅니다. 백운모 외에 견운모, 금운모, 흑운모가 있는데 이들도 페이스파우더, 파우더 블러셔에 섞으면 투명감이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운모는 고온에 강하고 광택이 뛰어나 화장품 외에 자동차, 가전제품, 전력산업, 제련산업 등에 널리 쓰입니다.

그런데 이 유용한 운모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아십니까? 운모의 주요 생산지는 인도, 중국, 스리랑카입니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인도산 제품이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인도는 전 세계 운모 소비량의 80% 이상을 생산합니다. 왜 인도산이 가성비가 좋을까요? ‘아동 노동’으로 인건비가 낮기 때문입니다.

운모는 화강암을 구성하는 조암광물로 채굴하려면 땅속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데 워낙 좁아서 성인이 들어가지 못해 몸집이 작은 아이들을 시킵니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일하면 300루피, 한화로 약 5000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더욱이 운모 채굴의 70% 이상이 버려진 채석장에서 불법으로 이루어져 안전 대책이 미비해 많은 아이들이 채굴 작업 중 사고를 당하고 있습니다. 신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얼굴이 아름다워질수록 인도 아이들은 어두운 땅속에서 죽어나간다고 생각한다면 꽃단장한 얼굴이 그리 예뻐 보이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위에서 말한 사회운동가가 되고 싶다던 학생과 같은 친구들이 많아지고 이들이 협력한다면 화장 자율화를 환경운동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화장을 허용하기 이전에 학생용 화장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황입니다. 인권 문제나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화장품을 생산하도록 요구하는 겁니다.

학생들에게는 개념 연예인처럼 개념 있는 착한 화장품을 사용하도록 권유하는 것이죠. 학생 스스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치적으로 논의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런 운동은 현재 상황에서 아주 적합합니다. 최근 기업들은 합성 운모를 개발해 천연 운모를 대체하고 있어 인도의 운모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사회 참여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들도 이에 대응해 소비자의 요구대로 천연 운모를 사용하지 않거나 노동 문제가 없는 천연 운모나 합성 운모를 이용해 화장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화장품에 사용되는 화학약품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피부염 등을 방지하는 화장품을 만들어 내도록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착한 화장품 운동이 확산된다면 청소년을 위한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비용이 증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고가 패딩처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화장 자율화를 학교에 자율적으로 맡겼듯이 이것도 아이들에게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맡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모든 학생들이 화장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학생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처음부터 교칙을 정하고 규제하는 것보다 토론을 통해 자치적으로 교칙을 만든다면 더 책임감을 갖고 준수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운동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과 일치합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2015년 유엔 회원 국가들이 모여서 ‘지속가능한 지구의 발전’을 위해 국제적인 약속을 한 것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면서도 미래 세대가 자원을 사용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개념을 구체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17개 분야로 나눠 정했습니다.

착한 화장품 운동과 관련 있는 SDGs는 1번 빈곤 퇴치, 4번 양질의 교육, 8번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17번 지구촌 협력입니다. 착한 화장품 운동을 한다면 인도의 아이들을 돕는 일이며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는 셈입니다.

이수종 서울 신연중 교사·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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