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에 질병명 붙으면… 의약품으로 오해 치료제로 둔갑”

홍은심 기자

입력 2019-06-12 03:00 수정 2019-06-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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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피부과학회-피부과의사회 등… 기능성 화장품에 질환명 표시 반대

대한피부과학회, 대한피부과의사회 등이 5일 서울 더플라자 호텔에서 질환명이 포함된 기능성 화장품을 반대하는 합동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피부과 의사, 시민단체, 환자단체가 기능성화장품에 아토피 등 질환명을 기재할 수 있도록 한 화장품법 시행규칙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대한피부과학회는 5일 ‘아토피 등 질환명이 포함된 기능성 화장품을 반대하는 학계, 시민단체, 환자단체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부과학회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부터 질병명이 포함된 기능성 화장품을 허용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첫 시도는 2014년 10월로 식약처는 기존의 자외선, 미백, 주름 3종 범위에서 아토피, 여드름, 탈모 등 질환 범위까지 기능성 화장품 영역 확대를 위한 화장품법 개정을 정부안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모두로부터 화장품 업체를 대변한다는 지적을 받으며 무산됐다.

2015년 11월에도 ‘표시광고 실증에 관한 규정’에 ‘아토피 피부에 보습’이란 문구를 표시 광고할 수 있도록 실증 대상 항목에 ‘아토피’를 추가하려는 개정 시도를 했으나 학계와 시민단체의 큰 반대로 무산됐다.

2016년 5월에는 기능성 화장품의 범위를 총리령으로 포괄 위임이 가능하도록 화장품법 개정을 시도했고 국회 반대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질환명 언급이 없어 결국 통과됐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식약처는 3개월 후인 2016년 8월에 기존의 미백, 주름, 자외선 3종인 기능성 화장품의 범위를 아토피, 여드름, 탈모 등 질환명을 포함하는 내용의 ‘화장품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피부과학회,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 대한피부과의사회는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과 관련한 의견조회 절차에서 강력히 반대 입장을 피력했고 식약처장과의 면담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화장품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은 2016년 말, 2017년 초 탄핵정국의 혼란 속에서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시행됐다.

서성준 피부과학회 회장은 “일반 소비자인 국민은 질병 이름을 표시한 화장품이 해당 질병에 의학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오인할 수 있으며 화장품에 의존함으로써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질병이 악화될 수 있다”면서 “이는 치료 시기의 장기화 및 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질병 이름과 의학적 효과를 표시한 화장품은 해당 질병에 효능을 가진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명목하에 고가로 책정돼 소비자인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며 “국민의 가중된 경제적 부담은 관련 업체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건 충분히 예측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화장품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화장품에는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할 수 없고 질병에 관한 표현이 금지돼 있다”면서 “의학적 효능에 관련된 내용을 포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식약처는 피부 관련 학술단체와 시민단체는 물론 환자단체가 지속적이고 일관된 태도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전했음에도 2017년 5월 30일자로 이를 강행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민석 피부과의사회 회장도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하지만 화장품에 질병명이 붙는 순간 의약품으로 오해받고 치료제로 둔갑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실제 아토피를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도 시행규칙의 부당함을 토로했다.

20여 년째 아토피를 앓아 온 최모 씨는 “화장품에 질병명이 들어가면 아토피가 호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그동안 많은 치료를 다양하게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태인데 기대감을 갖고 화장품을 발랐다가 실패하면 정신적 상실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순 아토피 희망나눔회 공동대표는 “기능성이라고 하면 미백이나 주름개선, 자외선 차단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행규칙이 시행된다는 소리에 말이 안 나왔다”면서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의 부모들은 치료를 위해 많은 돈을 쓰는데 화장품에 아토피라는 질환명을 넣는 건 너무 상업적”이라고 비판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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