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 “패션 아닌 내 인생을 전시합니다”

김민 기자

입력 2019-06-07 03:00 수정 2019-06-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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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서 자신의 커리어를 담은 전시회 여는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
첫매장의 메모-패션쇼 과정 영상 등 무명시절서 최근까지의 여정 선봬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5일 만난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 자신의 커리어를 다룬 전시 제목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에 대해 그는 “모든 사람이 나를 알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 에 이렇게 붙였다”고 설명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제 프레젠테이션이 너무 지루하진 않았죠? 다행이네요!”

훤칠한 키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73)가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담은 전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8월 25일까지) 개막으로 한국을 찾았다.

“보통 패션 전시는 옷을 보여주거나 브랜드를 홍보하죠. 하지만 제 전시는 ‘폴 스미스’의 성장 과정을 담았어요. 패션보다 인생에 관한 전시입니다.”

이날 스미스는 격식 있는 감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버건디와 네이비 색이 교차된 줄무늬 양말을 신었다. 예의를 갖추면서 위트와 친근함을 잃지 않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시에도 그는 ‘겸손’을 강조했다.

“전시장 초입에 1평 남짓한 제 첫 매장 보셨죠? 이 전시는 보잘것없는 상황에서 출발해 노력하며 경력을 일궈 나가는 것, 삶을 향한 적극적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시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 호텔방을 쇼룸으로 사용한 기억, 첫 매장에서 기록한 메모 등을 볼 수 있다. 패션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있다. 스미스는 “내 커리어의 구체적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인 전시”라고 했다.

독창적 아이디어가 자산인 디자이너가 민낯을 공개하는 게 껄끄럽진 않았을까. 그에게 ‘왜 비법을 공개하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전시가 굉장히 솔직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죠. 바로 제 마음속에 들어오는 거죠. 호기심 많고 삐딱하게 보길 좋아하는 제 마음은 저만이 볼 수 있답니다.”

2013년 같은 제목으로 영국 런던디자인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전시는, 뮤지엄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데얀 수직 관장(66)은 “내 사무실 책상이 세상에서 가장 어지럽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어지러운 스미스의 책상을 공개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에도 전시된 스미스의 책상엔 최신 기기와 오래된 라디오가 함께 놓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혼합이 인상적이다. 이 얘기를 건네자 스미스는 웃으며 재킷 안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재밌는 관찰이네요. 전 여전히 아날로그 드로잉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해요. 물론 최신 기술도 활용하죠. 그러나 유명한 ‘멀티 스트라이프’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종이 위에 여러 색의 털실을 감아 입체감을 만들고, 그 색들이 서로 부딪치며 아주 정확하고 환상적인 스트라이프가 탄생하죠.”

40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한 팬의 독특한 선물도 만날 수 있다. 의자, 스키, 스케이트보드, 닭 인형 등 온갖 물건이 박스도 없이 우표만 붙은 채 그에게 보내졌다고 했다.

“손 글씨가 매번 같아 한 사람이 보낸 거라 추측할 뿐 누가 보냈는지 아직도 몰라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우정의 표현이 놀랍고 사랑스럽죠.”

그는 자신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전시를 통해 과거를 보니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지금에도 전 여전히 그런 것이 좋습니다. 젊은 디자이너에게도 좋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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