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햄버거가 뭐라고 줄 서길 마다 않나

강지남 기자

입력 2019-06-01 15:46 수정 2019-06-0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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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앤아웃’ ‘블루보틀’ 줄 서기에 담긴 ‘인싸’의 욕망과 ‘팩트 체크’ 놀이

블루보틀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국내 첫 매장을 오픈한 5월 3일 오전 많은 시민이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줄 서 있다(왼쪽). 쉐이크쉑 햄버거, 블루보틀의 커피와 베이커리,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의 컵케이크(오른쪽 아래부터). [홍중식 기자, 인스타그램 @hellowooya, 매그놀리아베이커리코리아 페이스북]뢷袶诬肝袠ꃬ邗겋雭ꒋ‮苫낡냬蒏
평일 오후 5시,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 1번 출구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 앞서가던 20대 여성들의 비명이 들렸다.

“야, 오늘도 줄 대박이야!”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전 세계 스페셜티(Specialty) 커피의 대명사로 통하는 ‘블루보틀(Blue Bottle)’의 첫 한국 매장인 서울 성동구 성수점. 5월 3일 개장 첫날 커피 한 잔을 주문하려면 서너 시간씩 줄 서야 했는데, 개장 4주 차에 들어선 이날도 대기 줄이 매장 밖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블루보틀커피코리아 관계자는 “오픈 첫날 이후 대기시간이 주말과 평일 모두 2시간가량으로 다소 줄었고, 현재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사이”라고 전했다.


“굿즈만 사더라도 줄 서세요”
블루보틀 성수점개점일인 5월 3일 오전매장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는 사람들. [뉴시스]

줄 선 사람은 20, 30대가 대부분.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도 있었다. “여기가 그 블루커피인가요?” 하고 묻는 한 무리의 중년 여성도 보였다. 한 직원은 ‘블루보틀 안내문’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다니며 연신 손님들에게 당부 사항을 설명했다. 음료 주문은 처음 1회만 가능하다(커피 한 잔 더 마시려면 다시 줄 서야 함), 뒤늦게 온 일행이 중간에 합류할 수 없다, 화장실 가느라 줄을 이탈하려면 사전에 꼭 직원에게 얘기해달라, 주차 지원은 안 된다 등등.

“저, 커피는 마시지 않고 굿즈만 좀 사갔으면 하는데….”(20대 남성 손님)

“그래도 줄 서야 합니다. 그런데 텀블러는 다 팔리고 없어요.”(직원)

꼬리에 꼬리를 문 대기 줄의 분위기는 1980~90년대 명절 귀향 기차표를 사려고 서울역에 몰려든 인파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기다림이 지루한 듯한 이는 없어 보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실시간 사진을 올리거나, 일행과 대화를 나누거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했다. 30여 분 줄을 선 끝에 매장 안으로 들어가도 공항 발권 카운터처럼 구불구불 줄이 이어지지만, 그 대신 ‘구경거리’가 등장해 심심함이 덜하다. 매장은 1층 콘크리트 바닥의 일부를 뜯어냈는데, 그 너머로 전면이 유리창으로 된, 커피콩을 볶는 널찍한 시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지하 1층)로는 커피원두와 물의 무게를 저울로 재가며 정확하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과 카메라, 마이크 등 개인방송장비를 갖추고 그들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친구와 함께 블루보틀 매장을 찾은 한 20대 여성은 “미국 뉴욕에서 맛봤던 바로 그 커피를 다시 마시고 싶어 왔다”며 “친구는 블루보틀 로고가 들어가도록 인증샷만 찍고 길 건너 카페에 가자고 했지만, 이 정도 줄은 주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설득해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2016년 8월 오후 오픈한 지 한 달 된 쉐이크쉑 강남점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 선 시민들(아래)과 카메라로 쉐이크쉑 햄버거를 촬영하는 한 고객. [홍중식 기자]

5월 22일 서울 강남구 한 레스토랑에서 열린 ‘인앤아웃 버거’(In-N-Out Burger·인앤아웃) 팝업 행사장에도 아침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쉐이크쉑(Shake Shack)’ ‘파이브가이즈(Five Guys)’와 함께 미국 3대 햄버거로 불리는 인앤아웃은 해외 사업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로스앤젤레스(LA) 등 서부 위주로만 매장을 운영한다. 이런 햄버거 가게가 행사 전날 모 신문에 광고를 내자, 이것이 SNS와 언론보도로 널리 퍼지면서 행사장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행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로 예정됐는데, 오전 7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전 10시가 되기 전 준비된 250개 번호표가 모두 배부됐다고 한다.

쉽게 접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위해 몇 시간이고 줄 서는 현상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애플에서 신제품을 선보였을 때, H&M이 유명 명품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 의상을 출시했을 때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섰다. 그런데 그 ‘목표물’이 최신 정보기술(IT) 기기나 한정판 의류가 아닌 ‘사소한’ 것이어도 사람들은 기꺼이 몇 시간씩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 TV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가 즐겨 먹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컵케이크가 2015년 8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선보였을 때,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공원의 작은 카트에서 시작한 쉐이크쉑이 2016년 7월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 첫 한국 매장을 열었을 때도 두세 시간씩 줄 서는 것이 기본이었다.

요즘 경기 양평 여행의 최고 ‘인싸템’은 연잎핫도그다.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이 핫도그가 소개된 이후 SNS에는 ‘1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연잎핫도그를 먹었다’는 후기가 연일 올라온다. 연잎을 넣고 튀긴 소시지빵에 설탕과 케첩, 머스터드소스를 뿌려주고 매운맛과 순한 맛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3000원짜리 핫도그를 먹으려고 장시간 줄 서기를 감수하는 것이다.


“현지와 똑같은지 제가 먹어보겠습니다”
5월 22일 오전 인앤아웃 버거 팝업 행사장 주변에서 시민들이 햄버거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아래). 인앤아웃은 신선한 냉장패티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뉴스1, 위키피디아]

기성세대의 눈에는 시간 낭비로 비칠 수 있는 ‘줄 서기’를 젊은 세대가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최근 펴낸 저서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에서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경향을 이렇게 구분 짓는다. ‘X세대가 경험의 맛을 알아간 첫 세대라면, 밀레니얼 세대는 소유보다 경험으로 소비의 방향을 바꾼 첫 세대다.’ 김 소장은 ‘블루보틀 현상’에 대해 “SNS로 일상을 보여주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오늘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려면 결국 ‘경험’을 공개해야 하기에 경험 소비가 증가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20대 회사원 전모 씨는 도쿄 여행 도중에 블루보틀 매장을 일부러 찾아가 커피를 마시고 인증샷을 SNS에 올렸다. 그는 “많은 사람이 SNS에 블루보틀 후기를 올리는 것을 보고 커피 맛이 어떤지 궁금해 찾아가봤다”며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얘기하고,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있으니 줄 서는 것이 크게 힘든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앤아웃 팝업 행사장에는 개인방송장비를 들고 온 이가 상당수였고, 실제로 유튜브에는 ‘인앤아웃, 제가 먹어봤습니다’ 같은 유의 후기 영상이 수십 편 올라와 있다. 현장에서 생중계하는 유튜버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여행채널 ‘유트래블’을 운영하는 대학생 유정(23) 씨는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곳을 직접 다녀와 그날 바로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유씨가 게재한 인앤아웃 팝업 행사 후기 영상도 그의 채널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젊은 세대가 국내에 들어온 해외 브랜드에 대해 궁금해하고 확인하는 주요 사항은 ‘현지와 똑같은가’ 하는 일종의 팩트 체크다. 성수동에서 마시는 블루보틀 뉴올리언스 커피 맛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에 마셔본 그 커피와 같은지, 신선한 냉장패티만 고집하기 때문에 서부에서 동부로 진출하지 않는다는 인앤아웃이 그보다 더 먼 서울 팝업 행사장에서도 냉장패티를 사용해 LA에서와 똑같은 맛을 내는지를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다.

유씨는 “팝업 행사장에 감자튀김 대신 감자칩이 나온다고 해 ‘그러면 진짜 인앤아웃이 아니니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현장에서 인앤아웃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은 특별한 감자와 기름을 사용하는데, 그걸 수입하는 절차가 까다로워 어쩔 수 없이 감자칩을 내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티는 미국 쇠고기를 들여와 행사 전날 밤에 만들었다고 했다. 인앤아웃 본연의 맛을 보여주려 노력했다는 걸 확인하고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의 블루보틀 매장은 일본 건축미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앤아웃은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팝업 행사를 연다. 사진은 5월 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행사 모습(아래). [인스타그램 @bluebottlejapan, DESIREE LOH-The StraitsTimes]

공장 분위기를 물씬 내는 블루보틀 성수점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블루보틀 본연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어디서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는 블루보틀 정신이 엿보인다”는 의견과 “도쿄나 교토에서는 일본의 전통 건축미와 블루보틀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잘 결합했는데, 성수점은 한국의 미(美)를 살리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상존한다. 이에 대해 블루보틀커피코리아 관계자는 “기존 건물 구조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지역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블루보틀만의 ‘웜 미니멀리즘(Warm Minimalism)’ 디자인을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리테일 분야를 연구하는 황지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상세한 정보를 얻는 요즘 소비자는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더욱 중시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특히 해외로 진출한 브랜드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핵심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면서 현지 여건에 맞춰 정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줄 서기를 기꺼이 감내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태도는 ‘N포세대의 소확행’으로도 해석된다.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확실한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라는 것이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CMO캠퍼스 대표)는 “최근 젊은 세대가 스포츠토토 같은 복권을 많이 구매하는 것에 대해 기성세대가 걱정하는데, 이들은 기득권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를 제치고 신분 상승을 하는 것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차라리 더 높다고 여기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지금 당장 큰돈 들이지 않고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즐기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좌절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앤아웃, 세계 각 도시에서도 팝업 행사 진행

인앤아웃은 해외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 린시 스나이더 인앤아웃 회장은 지난해 미국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독특하다는 것, 즉 골목마다 우리 매장이 있지 않다는 게 좋다. 인앤아웃이 모든 주(州)에 진출한다면, 우리는 광채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서울 행사를 이끈 에릭 빌링스 인앤아웃 매니저(Manager of Special Foreign Events)도 “서울 진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인앤아웃은 왜 팝업 행사를 열까. 인앤아웃은 서울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각 도시에서 똑같은 포맷(행사 하루 전날 공지, 3시간만 운영, 감자튀김 대신 감자칩 제공 등)으로 팝업 행사를 진행한다. 5월 6일 싱가포르, 14일 중국 베이징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고, 22일 서울 행사를 마친 뒤 필리핀 마닐라로 날아가 27일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인앤아웃의 팝업 행사는 우선 상표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대부분 국가는 상표권에 대해 ‘사용하지 않으면 취소(Use It or Lose It)’하는 원칙을 적용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상표권 미사용 기한은 3년. 이 때문에 한국에서 2012년 상표권을 출원한 인앤아웃은 2015년에 이어 올해 팝업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단지 상표권 유지가 목적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상표권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법은 ‘계속하여’ 3년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경우 상표권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제119조 1항 3호), 단발성 행사만으로 상표권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인앤아웃이 해외시장 진출을 계획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황지영 교수는 “팝업 행사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해외 여러 도시에서 소비자 반응을 꾸준히 체크하기에 좋은 수단”이라며 “SNS와 미디어까지 나서서 입소문을 내주는 것도 인앤아웃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마케팅 효과를 거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간 기획 전문회사 오티디코퍼레이션의 이진욱 개발팀 차장은 “기업 가치를 높여 많이 투자받으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식 매장을 낼 계획조차 없음에도 해외 소비자들이 뜨겁게 반응하는 브랜드라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시장에서 ‘글로벌 가치를 가진 회사’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호기심을 충성심으로 오해 말아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왼쪽)과 압구정본점의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매장. 두 매장 모두 현재는 수익 악화로 철수됐다. [뉴시스, 매그놀리아베이커리코리아 페이스북]

그렇다면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은 곧 해당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심’을 나타낼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한때 미국을 포함해 글로벌 매장 전체 중 1위 매출을 기록한 쉐이크쉑 강남점은 현재 손님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줄 설 정도로 붐비진 않는다. SNS 인증샷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쉐이크쉑 국내 사업을 진행하는 SPC그룹 관계자는 “강남점이 지금도 세계 1위인지는 미국 본사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국내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희소성을 고집하기보다 매장을 확대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아래 2025년까지 매장을 현재 8개에서 25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를 국내에서 독점으로 운영하는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판교점, 대구점에서 4개 매장을 운영하다 수익 악화로 지난해부터 차례로 매장을 철수해 현재 대구점만 운영하고 있다.

최명화 교수는 “소비자의 호기심과 충성심은 구분해야 한다”며 “젊은 세대가 긴 줄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늘 ‘새로운 것(something new)’을 좇기 때문이지, 해당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커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진욱 차장은 “오픈 효과와 희소성으로 처음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후 만만치 않은 국내 업체들과 경쟁하면서 까다로운 소비자를 꾸준히 만족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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