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여성들 공공난임센터 반대 왜?
박성민 기자
입력 2019-05-31 03:00 수정 2019-05-31 05:28
서울시가 39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의료원에 ‘공공난임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난임 여성들이 반발하고 있다. 난임 여성들에게는 시술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이 실효성이 큰데도 ‘전시성’ 행정에 세금을 쓴다는 이유에서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르면 올 하반기에 중랑구에 위치한 서울의료원에 공공난임센터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난임 시술 전문의 충원과 시설 확충에 필요한 예산 39억 원을 책정해 이달 23일 발표한 추가경정예산안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난임 여성들은 “난임 가족 지원 정책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며 반발했다. 서울시 온라인 청원 사이트인 ‘민주주의 서울’에는 ‘공공난임센터 설립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400여 건 올라왔다. 한 청원자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난임 전문의를 두고 누가 검증 안 된 공공난임센터에서 시술을 받겠느냐.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라면 소외 계층에게 직접 시술비를 지원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또 난임 여성들의 절대 다수는 공공난임센터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불임은 없다. 아가야 어서 오렴’에서 회원 10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9.1%(900명)는 서울시에 가장 바라는 난임 정책으로 ‘난임 시술비 직접 지원’을 꼽았다. 공공난임센터를 원한다는 응답은 1.4%(14명)에 그쳤다. 난임 여성 회원들은 “병원이 없는 게 아니라 비용 부담 때문에 시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차라리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의 지원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일부 난임 가족들은 빚을 내 시술 비용을 마련할 만큼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낀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아도 본인부담금(체외수정 기준)은 1회 102만∼114만 원에 이른다. 검진비, 약값 등을 더하면 많게는 200만 원이 넘는다. 건강보험 지원 횟수를 모두 소진한 경우엔 한 회에 400만∼500만 원까지도 내야 한다. 난임가족연합회 박춘선 회장은 “39억 원이면 약 2000명의 난임 시술비를 지원할 수 있다”며 “공공난임센터 지원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난임센터 추진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 3월 난임 부부들과의 간담회에서 난임 여성, 산부인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난임 지원 정책협의체’를 꾸려 난임 여성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지만 난임협의체에서 공공난임센터 설립안은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공공난임센터의 지속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료원이 2011년 개설한 ‘미래맘가임클리닉’은 전문의 부족과 이용률 저조로 2017년 문을 닫았다. 국회에서도 2017년 공공의료기관에 난임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실효성 문제로 폐기됐다.
서울시 나백주 시민건강국장은 “공공난임센터는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의 난임 시술 기회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며 “본인부담금을 최대한 낮추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의 난임 시술 지원은 정부 정책에서 소외된 계층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건강보험 지원 횟수를 다 소진해 경제적 부담이 큰 난임 가족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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