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재정관리 대책 ‘핵심’은 빠지고… ‘숫자 싸움’된 나랏빚 논쟁

세종=이새샘 경제부 기자

입력 2019-05-28 03:00 수정 2019-05-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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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비율은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비율 40%의 기준은 뭐냐”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물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가채무비율 40%’ 논란이 촉발됐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료에게 견해를 물었더니 “사실 채무비율 40%를 딱 지켜야 한다는 법은 없다”며 이런 두루뭉술한 답이 돌아왔다.

이 애매한 답변 속에 국가채무비율이 논란이 되는 이유가 숨어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가 진 빚의 비율을 뜻하는 국가채무비율은 나라의 신용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하지만 산출 방식도 다양하고 적정 기준이 무엇인지는 학자들 간에도 견해가 엇갈린다.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해 복지 지출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과거보다 낮아진 경제성장률을 감내해야 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나랏빚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재정의 역할과 국가채무의 기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 공기업 빚까지 합하면 국가채무비율 60%

국가채무비율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채무가 뭘 의미하는지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표현은 ‘나랏빚’이라고 해도 그 기준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 정부가 말하는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접 진 빚을 합친 것(D1)을 의미한다. 지난해 국가채무비율이 38.2%였다는 것도 이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정부는 직접 진 빚 외에도 여기저기 보증을 많이 서주기 마련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한국국제협력단 같은 비영리 공공기관에 채무가 있을 경우 결국은 국가가 그 빚을 갚는 주체가 된다. 이 빚까지 합친 것이 일반정부 채무(D2)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 일반정부 채무를 기준으로 GDP 대비 채무비율을 계산한다. 한국의 D2 비율은 2017년 기준 42.5%다. 일본(234%·2017년 기준)이나 지난해 미국(138%) 등 주요 선진국보다는 낮다. 하지만 사회보장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43%), 노르웨이(45%), 덴마크(49%) 등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전력공사, 한국조폐공사 같은 비금융 공기업이 있다. 이들은 다른 민간 기업처럼 시장에서 영리 활동을 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이들이 진 빚을 국가채무에 포함시켜 계산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가 공기업을 통해 대형 토목사업 등 국책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국가가 주도해 벌이는 사업이지만 직접 채권을 발행하지 않고 공기업이 대신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이들 공기업이 진 빚까지 합한 한국의 국가채무(D3) 비율은 2017년 기준 60.4%에 이른다.


○ 나라마다 감내할 수 있는 채무비율 달라

국가채무비율이 논란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적정 국가채무비율의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학자에 따라서는 최대 200%까지 비율을 높여도 된다고 보는 경우도 있는 등 기준이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국가채무비율이 다소 높아지더라도 무리가 없다고 보는 입장은 현재 나랏빚에 매겨지는 이자가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 교수는 “현재 한국의 경상성장률(실제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것)은 3%대로 1%대인 국채 금리와 약 2%포인트 차이가 나는데,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의미”라며 현 상황에서 국채를 잘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자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고, 빚을 낸 돈을 잘 쓰기만 한다면 성장률을 더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서 집값이 대출이자 이상으로 오르기만 하면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절한 채무비율을 유지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우선 재정건전성은 국가신용도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항목 중 하나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2014년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Aa3’에서 ‘A1’으로 강등한 바 있다. 일본은 엔화를 찍어내 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인데도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이다.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 신용등급 하락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채 이자율이 높아지고,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낮은 국채 금리-재정 조달 및 투입-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이 악순환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한국은 혹시 모를 통일비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특수성이 있다.

이처럼 각국이 감내할 수 있는 국가채무비율은 서로 달라 무 자르듯 한 가지 기준으로 정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예를 들어 2010년 스페인은 국가채무비율이 62.9%로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재정위기 가능성이 제기됐다. 반면 일본은 국가채무 대부분을 자국민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재정위기 가능성이 거론되지 않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GDP, 세수안정성, 대외채무비율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D3 기준 국가채무비율의 한계는 64.1%”라고 분석했다. 2017년 현재 D3 기준 국가채무비율인 60.4%와 불과 3.7%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내년 예산이 500조 원을 넘을 경우 국가채무는 한계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지금이라도 재정준칙 정해야”

사실 최근 일어난 국가채무비율 40% 논란은 이전 정권에서도 똑같이 벌어졌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30%를 넘긴 국가채무비율은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연금 등 복지지출이 늘어나며 2016년 38.2%까지 빠르게 늘어났다. 그때는 “채무비율이 높다”며 공격하는 쪽이 현재의 여당이었고,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며 방어하는 쪽이 현재의 야당이었다는 점만 다르다.

정권에 따라 공수만 바뀐 채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하는 동안 미래 재정위기에 대비할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6년 내놓은 장기재정전망에서 현행 법률 및 제도가 2060년까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151.8%로 전망했다. 또 2035년에는 우리 경제가 국가채무로 인해 경제성장이 부담될 정도로 세금을 늘리거나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 한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무비율이 높냐, 아니냐로 정쟁만 하는 대신 재정준칙을 정해 국가채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독일이나 스페인 등은 재정준칙을 헌법에 넣어 국가채무비율의 관리 목표를 정해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기획재정부가 2016년 국가채무비율 45%를 관리 목표로 한 재정건전화법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도 계류 중이다.

23일 홍남기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단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이 다소 상승하더라도 재정 여력이 있으니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또 경제 활력을 높여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국가채무가 늘어나도 경제를 성장시키면 국가채무비율은 다시 낮아질 수 있으니 지금은 돈을 좀 쓰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장 잠재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뚜렷한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빚내서 돈 쓰며 기분 내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빚을 갚는 것은 길고 고통스럽다. ‘국가채무비율 40%의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과 정부가 답을 내놓을 때다.
 
세종=이새샘 경제부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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