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연가희 “눈물 딛고 컴백…‘내 머물 곳’ 찾았어요”

양형모 기자

입력 2019-05-17 05:45 수정 2019-05-1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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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연가희가 패션모델 출신답게 멋진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일본에서 트로트와 민요로 큰 인기를 얻고 돌아온 연가희는 보사노바 리듬의 트로트곡 ‘내 머물 곳은 어디에’로 국내 트로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패션모델 출신’ 트로트가수 연가희 인터뷰

“일본 활동 시련의 나날들…팬들 응원에 극복
타이틀곡 ‘내 머물 곳은 어디에’ 운명의 노래”

“이 곡, 누구 주기로 하셨어요?”

가수의 말에 피아노를 치던 작곡가 공정식은 눈만 끔뻑였다.

“선생님, 이 곡 저 주세요.”

연가희의 앨범 타이틀곡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의 대표곡 ‘내 머물 곳은 어디에’는 이렇게, 운명처럼 그의 것이 되었다.

원래 타이틀곡 ‘좋을 걸’은 빠른 템포의 정통 트로트 곡이었다. 깐깐한 작곡가의 입에서 “이제 됐습니다”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꼭 1년이 걸렸다. 타이틀곡을 연습하기로 한 마지막 날.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간 연가희의 눈에 자신의 곡이 아닌 다른 곡을 치고 있는 작곡가가 들어왔다.

“처음 듣는 곡인데 멜로디가 너무 좋았다. 피아노 치시는 걸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더라. 이 곡은 무조건 내가 불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선생님과 딱 세 번 연습하고 녹음실로 들어갔다. 원래 타이틀곡은 1년이나 연습했는데.(웃음)”

‘내 머물 곳은 어디에’는 삶에 지친 중년의 영혼을 위한 노래다. 산뜻한 보사노바 리듬 위로 연가희 특유의 감성 짙은 보컬이 부드럽게 물결친다. 듣고 있으면 오래된 기억이 영화 컷처럼 편집되어 떠오른다. 트로트 같지 않으면서, 가장 트로트 같은 곡. 연가희가 가진 소리가 그렇다.

그에게는 ‘패션모델 출신 가수’라는 이름표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늘 노래에 대한 꿈이 있었다. 노래의 DNA는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았다. 동네에서 노래자랑이라도 열리면 상이란 상은 모조리 쓸어왔던 어머니였다. 음악성과 외모를 물려준 어머니였지만 막상 딸이 가수가 되겠다고 하자 심하게 반대했다.

“엄마는 내가 여느 집 딸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셨다. 그 마음 알지만… 난 엄마 속을 많이 썩여드린 애물단지였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엄마! 열심히 잘할게요. 사랑해요!”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가수가 되는 ‘길’을 몰랐던 연가희는 무작정 청주의 악기상을 찾아가 “노래가 너무 하고 싶다”고 졸랐다. 운이 따라주었는지 일이 주어졌다. MC였는데 무보수 조건이었다. MC를 하다가 기회를 얻어 정식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이렇게 연가희는 가수가 되었다.

빠른 템포의 댄스음악이나 발라드를 주로 부르던 그에게 트로트는 또 다른 도전이자 벽이었다. “굴리고 밀고 당기는 트로트의 구수하면서도 맛깔나는 창법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트로트 창법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나만의 샤우팅 창법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국악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배운 게 서도민요. 연가희는 “민요 덕을 일본에서 톡톡히 봤다. 일본에서 나는 ‘미녀’ 가수가 아니라, ‘민요’ 가수로 통했다”라며 웃었다. 앨범 수록곡 ‘얼씨구 좋다’에서 그의 민요실력을 엿들을 수 있다. 직접 가사를 쓴 이 곡은 트로트에 민요를 접목시킨 ‘퓨전가요’다.

트로트 가수 연가희.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012년 일본으로 건너가 활발하게 가수 활동을 해 온 연가희는 최근 본격적인 국내활동을 위해 돌아왔다. 이번에도 운명은 그의 등을 힘차게 떠밀었다.

“지난해 기획사 사기 등 일본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해 봤는데….”

자신을 잊은 줄 알았던 팬들이 거기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노래와 영상이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이대로 일본에서 좌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죽긴 왜 죽어. 다시 한번 해보자. 꿈을 이루어보자.”

이렇게 해서 연가희는 돌아왔다. 그의 노래처럼, 그는 머물 곳을 찾아 돌아왔다.

“내 노래를 더 많은 분들이 듣고 불러주실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

가수의 인생은 종종 자신의 노래를 닮는다. ‘내 머물 곳’을 찾았으니 이제 ‘좋을 걸’과 ‘얼씨구 좋다’를 만날 차례다. 운명이 또다시 그의 뒤를 힘차게 떠밀기 시작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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