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자 “정체성의 혼란 겪으며 나만의 새전통 만들어”

베네치아=김민 기자

입력 2019-05-15 03:00 수정 2019-05-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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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퍼포먼스 초청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자
마고할미-탈춤 등 한국적 전통, 서양적 이미지와 결합해 호평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서 10일 열린 제이디 자의 퍼포먼스 ‘마고할미’. 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마고할미 나가신다!”

10일 오후 베니스(베네치아) 비엔날레가 한창인 자르디니 공원. 둥둥대는 장구 소리와 우렁찬 한국어에 놀란 군중이 길을 비켜선다. 관객이 물러나 즉흥적으로 생긴 공간에 무용가 5명이 퍼포먼스를 벌이기 시작했다. 한국계 캐나다인 제이디 자(36·차유미·사진)의 ‘마고할미’ 작품이었다.

자는 랠프 루고프(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와 에런 세자(델피나파운데이션 디렉터)가 기획한 ‘Meetings on Art’에 초청받았다. 8일부터 12일까지 매일 선보인 그의 작품은 마고할미, 탈춤 등 한국적 전통을 서양적 이미지와 결합했다. 그 결과 한국도 서양도 아닌 ‘차유미’만의 새로운 전통이 탄생했다. 현지에서 만난 그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충분히 캐나다인도, 한국인도 아닌’ 어색한 위치에 있다고 느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늘 불안했죠. 정해진 국가적 정체성을 따르기보다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옷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녀의 작업은 스케이트보더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천 조각을 기워 붙이는 패치워크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작업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이것이 ‘보자기’와도 연결되며, 여러 문화를 혼합하는 이민자의 정체성과도 비슷하다고 봤다. 그는 “쓰고 남은 천으로 만드는 ‘보자기’의 형태와, 여러 사람의 협동으로 제작되는 방식이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녀가 만든 새로운 전통에선 여성이 중심이다. 거인인 데다 힘이 장사인 여신 ‘마고할미’가 작품의 중심에 선 이유다. 그 자신도 한국인 어머니와 이모 4명의 강인한 모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편 강인한 여성을 그린 ‘마고할미’ 이야기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 안타깝다고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 황혜숙이 마고할미를 연구한 ‘마고웨이’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마고할미를 세계 보편적 창조신으로 해석한 책을 보고, 서구 남성 중심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할 거라고 봤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단순한 어린이용 동화로만 소비된다니 아쉬워요.”

누군가가 정해준 정체성이 아닌, 주도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만들어가는 그의 작업은 디아스포라뿐 아니라 불안한 시대를 사는 모든 현대인에게 용기를 준다. 이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 영국 서펜타인갤러리, 헤이워드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베니스를 시작으로 더 많은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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