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쓰레기를 ‘고품질 연료가스’로…매출 64억 기록, 美 진출 본격화

강은지기자 , 충주=사지원기자

입력 2019-05-14 16:31 수정 2019-05-1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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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 음식물바이오에너지센터 변영욱기자 cut@donga.com


음식물쓰레기 반입장 안으로 들어서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동행한 김영오 현대건설 R&D센터 미래기술사업팀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 냄새가 나중에는 다 에너지가 되는 거예요.”

지난달 25일 찾은 충북 충주시의 충주음식물바이오에너지센터. 7t 차량이 짐칸을 들어올리자 음식물쓰레기가 저장조 안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이 곳에선 하루 80여 t의 음식물쓰레기로 바이오가스를 만든다. 국내에서 음식물쓰레기를 고품질 연료가스로 만드는 데 성공한 곳은 이 센터뿐이다.

기존 음식물 처리시설에서 처리하기 힘들었던 악취도 외부에선 거의 나지 않았다. 음식물쓰레기를 바이오가스로 만들고, 악취도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대건설과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2016년부터 이 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곳은 서진에너지다.

● 기술과 자본이 만나

서진에너지는 2014년 자본금 2억 원, 직원 3명으로 출발한 벤처기업이었다. 임태형 대표는 이전 직장에서 ‘혐기성 미생물(산소가 없는 곳에서 생육하는 미생물)’이 부패된 음식물, 즉 유기물을 분해해 가스로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 이전 직장이 부도가 나자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회사를 차렸다.

임 대표의 기술력을 알아보고 먼저 연락을 해온 곳은 현대건설이다.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바이오가스로 바꾸는 기술 개발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함께 제안하자는 것이었다. 폐기물 처리 문제가 주된 관심인 환경산업기술원은 이 기술 개발에 23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서진에너지는 현대건설과 함께 약 2년간 실증 연구를 진행한 결과 밀폐된 공간에서 폐기물을 분해해 바이오가스를 얻고 폐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막결합형 혐기성 소화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처리조 안에 있는 음식물쓰레기에 미생물을 주입하면 미생물이 음식물을 먹고 바이오가스로 바꾸는 게 핵심 기술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신생기업과 노련한 대기업이 협업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결과다.

● 환경산업기술원의 지원에 힘입어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오가스의 메탄 순도는 도시가스 품질기준과 동일한 97%에 달한다. 실제 충주시 지역난방 연료로 공급할 정도로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연구 과정에서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를 잡는 데도 성공했다. 악취가 발생하는 구역에 빨대처럼 생긴 관을 꽂아 악취를 포집한 뒤 약품으로 악취를 잡은 것이다. 그 덕분에 과거 민간 음식물처리장을 운영할 때는 반경 2km까지 악취가 나 민원이 심했지만, 음식물바이오에너지센터가 생긴 이후로는 악취 민원이 사라졌다.

음식물바이오에너지센터의 성공적인 운영으로 자신감을 얻은 서진에너지는 2017년 인천 서구에 있는 환경산업연구단지에 입주했다. 환경산업연구단지에 입주하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기술개발 사업자금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런 지원은 ‘죽음의 계곡(스타트업이 창업 3~5년 차에 사업화 단계에서 겪는 실패나 어려움)’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돕는 동아줄 역할을 한다고 스타트업들은 입을 모은다.

임 대표는 “환경산업기술원 덕에 기술을 보완해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이젠 자력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진에너지는 지난해 매출 64억 원을 기록했다. 직원 수도 30명으로 5년 만에 10배 성장했다. 최근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지사를 설립해 미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식품가공 공장에서 나오는 고농도 유기 폐기물을 가스로 만드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 해외 환경산업, 매년 3.6%씩 성장

국내 환경산업은 급성장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환경산업 관련 사업체는 2010년 3만3835개에서 2017년 5만8013개로 증가했다. 매출액도 2017년 기준 98조628억 원에 달한다. 해외 환경산업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1조1997억 달러(약 1140조 원)로, 연평균 성장률은 3.6%다.

환경산업기술원이 지난 10년간 환경기술 연구개발에 지원한 예산은 1조6600억 원에 이른다. 미세먼지 감축이나 폐기물 재활용, 유해화학물질 문제와 같이 일상에서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는 분야의 기술 연구를 중점 지원한다. 환경산업기술원의 지원을 받아 국내외에서 사업화에 성공한 규모는 7조6600억 원이다. 특허 출원만 4700여 건, 특허 등록은 2600여 건에 달한다.

남광희 환경산업기술원장은 “미세먼지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환경 문제들이 많아지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수요도 늘고 있다”며 “환경 분야 시장 전망이 밝은 만큼 우수한 환경기업들에 대한 전략적 지원을 확대해 국내 환경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면서 만든 에너지로 미세먼지 필터를 작동시키는 마스크나 헬멧을 만들면 어떨까요?”

초등학교 5학년인 손소현 군(12)의 이야기에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 군은 2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열린 ‘미세먼지 혁신기술·제품 타운홀미팅’에 참가해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헬멧을 활용해 안정성을 높이면서 미세먼지도 차단할 수 있다면 훌륭한 생활밀착형 아이디어”라며 “기술 개발이 가능한 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타운홀미팅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들로부터 직접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전문가들도 참석해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실제 상용화가 가능한 부분이 있는지 검토했다. 이번 타운홀 미팅에는 기업 관계자 65명과 시민 90여 명이 참석했다.

시민들은 미세먼지를 차단하면서 환기가 가능한 방진망, 미세먼지 이미지를 여러 장 찍어 밀도와 분포도를 자동 측정하는 기기 등에 대한 아이디어가 내놓았다. 새로운 제안이 나올 때마다 남광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을 비롯한 환경부 관계자들은 기존에 개발된 기술이나 현재 개발 중인 기술에 이 아이디어를 접목할 수 있을지 설명했다.

기업들이 연구하고 있는 미세먼지 저감 기술들도 소개했다. 퓨에에코택은 버스와 같은 차량 지붕에 설치해 도로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를 저감하는 ‘먼지고래’ 제품을 선보였다. 현재 서울시에서 이 제품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신정개발특장차는 기존 미세먼지 흡입 효율을 30%에서 99%로 끌어올린 집진(集塵) 장치를 장착한 미세먼지 흡입 청소차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제안된 30여 개 아이디어는 향후 기술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타운홀미팅이 1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은 환경산업기술원 홈페이지에 ‘미세먼지 기술·제품 아이디어 톡톡!’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누구나 이 곳에 미세먼지 저감 관련 아이디어와 건의사항을 제안할 수 있다. 기업들의 관련 기술도 찾아볼 수 있다. 환경산업기술원은 분기별로 아이디어를 분석해 특허화나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강은지기자 kej09@donga.com
충주=사지원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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