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승리…‘158전 159기’ 강성훈, 마침내 PGA투어 우승

김종석기자

입력 2019-05-13 18:21 수정 2019-05-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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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PGA투어에서 159번째 도전 끝에 첫 승을 거둔 강성훈. 댈러스=AP 뉴시스

강성훈(32·CJ대한통운)을 오랜 세월 지켜본 골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강성훈은 노력형이다.”

172cm의 키는 거구들이 즐비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뿐 아니라 한국 무대에서도 단신 골퍼에 들어간다. 그래도 그는 평균 드라이버샷 300야드가 넘는 장타력을 앞세워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자신의 159번째 출전 대회인 AT&T 바이런 넬슨에서 기록한 그의 드라이버샷 볼 스피드는 173마일. PGA투어에서도 상위권이었다. 생애 첫 PGA우승은 그러한 땀과 좌절은 있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인내가 빚어낸 값진 열매다.

강성훈은 중학교 시절부터 요즘까지도 매일 밤마다 손목과 팔 근력 강화를 위해 고무줄 당기기 운동을 빼놓지 않고 있다. 국가대표 시절 그를 가르친 한연희 전 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합숙 시절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늦게 자는 선수가 강성훈이었다. 하루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성훈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 놀러간 게 시작이었다. 싱글 골퍼인 아버지 강희남 씨는 “성훈이가 나도 쳐보고 싶다고 해 며칠 시켰더니 재주가 있었다. 용품을 구하기 힘들어 여성용 클럽과 장갑, 신발을 구해줬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재능을 보인 그는 중고 시절 국가대표로 뽑혀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버지 강 씨는 “육지에 있는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다. 10대 때 이미 미국 PGA투어 진출을 염두에 두고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인성을 강조했고 영어공부도 철저하게 시켰다”고 밝혔다.

강성훈은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로 나중에 타이거 우즈를 가르친 행크 헤이니에게 레슨을 받았다. 헤이니는 1시간에 레슨비만해도 500달러에 이르렀다. 이런 레슨을 보통 한 번에 20회 가량을 받아야 했다. 강성훈이 1년이면 6개월을 미국 전지훈련으로 보내면서 집안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제주 서귀포시에서 횟집을 하며 아들 지원에 정성을 다했다.

2006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 대회인 롯데스카이힐 오픈에서 우승하는 돌풍을 일으킨 뒤 그해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남자 골프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프로에 전향한 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신인왕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도전했다.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2011년 PGA투어에 데뷔했으나 세계의 무대는 높기만 했다. 데뷔 첫 해에 10차례나 예선탈락한 뒤 이듬해에도 30개 대회에 나갔지만 22번이나 컷 탈락을 해 투어카드를 잃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웹닷컴(2부)투어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가며 PGA투어 복귀의 순간을 기다렸다. 성적이 신통치 않다보니 메인스폰서도 떨어져 나가 그는 2년 가까이 모교인 연세대 모자를 쓰고 대회에 나섰다.

한때 자신을 우상으로 여기던 후배들이 먼저 PGA투어 우승을 하는 장면을 보며 자존심도 상했다. 주위에선 국내 복귀를 권유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웹닷컴 투어에서 상금 랭킹을 끌어올려 2016년 PGA투어에 복귀했다.

강성훈은 2016년 결혼한 후 지난해 가을에는 아들을 낳았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건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강건하게 살라는 의미였다. 가장이 되면서 강성훈은 아들 이름처럼 강건해졌다.

한때 강성훈의 심리상담을 맡았던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강성훈은 멘털 관리가 뛰어난 슈퍼엘리트 선수로 분류할 수 있다. 공의 궤적을 3차원적으로 상상하는 이미지트레이닝이 가능하다. 루틴카드를 항상 소지하고 골프장갑에 ‘오감집중’을 써 넣고 경기하는 등 스스로 터득한 주의 집중 노하우도 훌륭하다”고 말했다.

평생 잊지 못할 첫 우승의 현장에는 그의 아내와 8개월 된 아들이 함께 있었다. 활짝 웃는 아빠 강성훈의 미소가 밝기만 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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