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이착륙장 82% 조명 없어… 야간 응급환자 이송 아예 못해

조건희 기자

입력 2019-05-13 03:00 수정 2019-05-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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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3> ‘소생’ 가로막는 걸림돌

지난해 10월 경북 문경시에서 교통사고로 중증외상을 입은 40대 환자가 발생했다. 가까운 곳에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할 병원이 없어 안동병원에서 응급의료전용헬기(닥터헬기) 의료진이 출동했다. 하지만 환자를 태우기로 한 문경시 영강체육공원에는 사전에 통보되지 않은 체육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착륙장엔 애드벌룬과 천막 등이 설치돼 있어 헬기가 내릴 수 없었다. 결국 닥터헬기는 영강체육공원에서 9km 떨어진 산북초등학교에 착륙해 환자를 태워야 했다.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한 시간은 예정보다 15분 늦어졌다.



○ 닥터헬기 내릴 곳 없는 부·울·경

경북 영양군 공설운동장에서 119구급대가 70대 응급환자를 안동병원 닥터헬기에 태우기 위해 들것에 고정시키고 있다. 안동=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위기에 빠진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디든 날아가 소생 가능성을 높이는 게 닥터헬기의 존재 이유다. 이를 위해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전국 6개 병원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해 119구급대나 다른 병원으로부터 환자를 인계받을 수 있는 이착륙장인 ‘인계점’을 미리 정해두고 있다. 닥터헬기가 반드시 인계점에만 내려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가급적 다른 장소는 피한다. 인계점은 닥터헬기와 119구급차가 빨리 접근할 수 있고 행인 통제가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국의 인계점이 지난해 말 기준 828곳으로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10월 문경시의 사례처럼 인계점에 헬기가 내릴 수 없는 돌발 상황이 생기면 다른 인계점을 찾느라 수십 km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인계점이 없어 환자를 헬기에 태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17년 8월엔 전남 진도군 독거도에서 사고로 출혈이 심한 환자가 발생했으나 독거도에 인계점이 없어 닥터헬기가 출동하지 못했다.

그나마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전남과 인천 등 6개 시도는 인계점을 각각 90곳 이상 갖추고 있다. 하지만 닥터헬기가 없는 경기와 충북, 광주, 대구 등 4개 시도는 모두 합쳐 인계점이 37곳뿐이다. 부산과 울산, 경남 등 나머지 7개 시도엔 아예 인계점이 한 곳도 없다.


○ 고속도로-운동장 이착륙장 활용 시급


인계점을 시급히 확보해야 할 장소는 고속도로다. 대형 교통사고가 나면 정체가 심해져 119구급차가 사고 지점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2월 경부고속도로 판교분기점에서 교통사고로 중증외상 환자 3명이 발생했을 때도 교통 체증으로 구급차 접근이 힘들어지자 뒤늦게 닥터헬기가 출동했다.

현재 경북과 전북에는 197곳의 인계점이 있지만 고속도로에는 한 곳도 없다. 이 지역 고속도로 대부분이 편도 2차로로 헬기가 이착륙하기에 좁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사고 지점에서 가까운 휴게소를 인계점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헬기 이착륙 시 부는 강한 바람으로 주차된 차량 등이 파손될 수 있다. 이 경우 닥터헬기팀이 배상 부담을 져야 한다.

닥터헬기가 내리기 좋은 곳은 학교 운동장이다. 하지만 현재 전국 초중고교 1만1636곳 중 운동장을 닥터헬기에 개방한 곳은 148곳(1.3%)뿐이다. 이는 아직까지 닥터헬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결과로 보인다.

올해 1월 경기도가 도내 초중고교 2395곳 교장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1837곳(76.7%)이 닥터헬기의 운동장 착륙에 찬성했다. 보건복지부도 초중고교 운동장을 닥터헬기 인계점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야간 운항 위한 조명시설 필요

현재 닥터헬기가 출동할 수 있는 시간대는 ‘일출 후∼일몰 전’으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야간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조명시설을 갖춘 인계점이 전국에 151곳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원 지역은 인계점 92곳 중 조명시설을 갖춘 데가 한 곳도 없다. 201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닥터헬기가 일몰 전 환자 이송을 완료할 수 없어 출동하지 못한 사례는 288건에 이른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주축이 돼 올해 안에 도입할 일곱 번째 닥터헬기는 야간 운항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려면 그 전에 인계점마다 조명시설을 갖춰야 한다.

복지부는 올해 3월 소방청이나 산림청, 해경 소속 헬기가 쓰는 이착륙장에 닥터헬기가 내릴 수 있도록 새로운 운영 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새 규정에 ‘가급적 축사나 양계장, 비닐하우스 등과 인접한 장소는 피하라’고 명시해 적극적인 환자 구조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민원이나 배상 요구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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