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공부, 빚 갚으려 휴학… “돈에 짓눌려 취업 꿈 가물가물”

조은아 기자 , 남건우 기자

입력 2019-05-09 03:00 수정 2019-05-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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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갇힌 ‘적자 청춘’]생활고에 공부 뒷전 ‘취준생 악순환’


내년에 졸업하는 대학생 송모 씨(23·여)는 한국장학재단에서 3000만 원을 대출받아 학비와 생활비로 쓰고 있다. 식사는 학생식당에서 해결하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지만 역부족이다. 매월 대출 이자로만 10만 원가량이 나가고 지난 겨울방학엔 어학 자격증 접수비와 학원비로만 100만 원이 들었다. 송 씨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과외를 열심히 뛰며 월 50만 원을 벌고 있다. 송 씨는 “학점 관리, 취업 준비에 과외까지 할 일이 너무 많다. 시간이 더 있으면 자기소개서를 하나라도 더 써내고 입사 상식 공부를 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사회 진출의 문턱을 넘기도 전부터 빚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대학 학자금과 주거 생활비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취업은 안 되고 빚만 늘어나니 하루하루가 적자(赤字) 인생이다. 빚을 갚으려고 학원 강사, 건설현장 일용직 등을 전전해 보지만 수입은 턱없이 모자라고 학업이나 취업 준비를 할 시간도 부족하다. 대학가에는 이처럼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 휴학생’ ‘장수 취업준비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 취업 위해 쓸 돈은 많은데 소득은 없어


요즘 청년들은 이전보다 취업 준비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10월 회원 4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 사교육에 연평균 342만7960원이 지출됐다. 어학시험, 자격증 준비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데만 매월 30만 원 가까운 돈이 나가는 셈이다.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부모에게 의존하면 되지만 대부분의 서민 가정에선 몇 년씩 백수 자녀를 뒷바라지할 여력이 안 된다. 그렇다 보니 청년들이 직접 아르바이트를 뛰며 생활비와 학비를 대고 그것마저 충분하지 않으면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신한은행 설문조사 결과 20, 30대 사회초년생(입사 3년 이내)의 부채 잔액은 2017년 2959만 원에서 2018년 3391만 원으로 14.6% 증가했다. 청년층의 빈곤율도 많이 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8∼25세의 빈곤율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13.1%로 10년 전에 비해 2.1%포인트 상승했다. 76세 이상 노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은 증가 폭이다.

빚이 쌓인다는 것 말고도 문제는 또 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청년들의 노력이 정작 취업 준비에는 엄청난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충북 제천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하는 이모 씨(32)는 대학 때 쌓인 학자금 대출만 1300만 원이다. 서울에 입사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드는 교통비, 교재비를 감당할 수 없어 종종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하루에 11만 원씩 번다. 이 씨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은 하루 종일 취업 준비를 하는데 나는 돈이 없어 일을 나가야 하니 구직 경쟁에서 밀릴까 봐 조바심이 난다”고 말했다.


○ “점점 꿈에서 멀어진다”

청년들은 빚을 갚느라 ‘무기 휴학’을 하며 꿈을 잃는다. 경기 용인의 한 대학을 다니다가 2년째 휴학 중인 정모 씨(20)는 매일 7, 8시간씩 웹드라마나 영화 보조 출연을 하고 각종 행사 사회를 보며 돈을 번다.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냈지만 부모에게 생활비 때문에 손을 벌릴 수는 없는 처지다. 정 씨는 “일만 하다가 하루를 마감하면 매일 꿈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라며 “나이가 더 들면 삶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무섭다”고 털어놨다.

금융회사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김모 씨(26)는 러시아어 통역사란 꿈을 접은 지 오래다. 7년째 휴학하며 군대도 못 간 채 편의점, 고깃집 등 알바를 전전했지만 장학재단, 저축은행 등에서 빌린 빚이 아직 2000만 원 남았다. 김 씨는 “돈 걱정 하지 않고 공부만 했으면 졸업을 했을 텐데 돈이 안 모이니 대학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한숨지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대학 3학년생 정모 씨(22)는 주거비 부담이 커서 대출을 받다 보니 신용등급이 하락해 좌절했다. 정 씨는 “대출을 받자마자 신용등급이 5등급 안팎에서 7등급으로 확 내려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신용에 하자가 생기니 우울하다”고 했다.


○ 취업 후에도 빚 부담에서 못 벗어나

뚜렷한 상환 계획 없이 무작정 대출을 받은 청년들은 나중에 취업 등으로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오랫동안 빚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대학 시절 학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수천만 원을 대출받은 윤모 씨(29·여)는 아직도 대출 원금의 절반 정도를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윤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집값과 물가가 올라 생활비 부담이 계속 커졌다”며 “애초에 너무 계획 없이 대출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처음 대출을 받을 때 신중하게 선택하고, 빚을 갚아 나갈 때는 ‘부채 다이어트’를 할 수 있도록 ‘빚테크’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경기 활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 등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들이 빚을 지는 원인에는 정부가 경기를 살리지 못하고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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