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10년째 제자리…이유는?

뉴스1

입력 2019-05-08 09:43 수정 2019-05-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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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금융위·복지부 정책협의체 회의서 대안 찾을까
전송위탁기관 두고 ‘고심’…심평원이 최적인데 의료계가 반대


1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종합병원에서 보호자들이 진료비 수납을 하고 있다. 2018.7.1/뉴스1 © News1

국민 33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하기 위해서는 전국 9만 여개의 의료기관과 모든 보험사를 잇는 중개기관이 필요한데, ‘최적’의 기관을 찾기 위한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회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보험사는 소비자들이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며 빠른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묘안을 찾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중개기관 심평원이 최적”…의료계 “결국 비급여 심사까지 할 것” 반대

8일 금융위원회·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두 부처가 참여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정책협의체 회의가 오는 10일 열린다. 이는 지난 2018년 9월 협의체가 꾸려진 이후 같은 해 10월과 올해 1월 머리를 맞댄 후 세 번째 만남이다.

현재 논의 중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절차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적으로 ‘의료기관→ 전송위탁기관→ 보험사’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고용진·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 소비자가 직접 서류를 떼 보험사로 보내는 불편이 없어진다.

금융당국은 적정한 전송위탁기관 선정을 위해 고심 중이다. 전송위탁기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다. 심평원은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의 진료를 적정하게 했는지 심사하고, 필요한 경우 진료비 삭감 조치를 취하는 정부기관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상 의료비는 크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와 적용되는 급여로 나뉜다. 실손보험은 비급여, 급여 중 환자 부담으로 남겨둔 본인부담금을 보장한다.

심평원은 이미 모든 의료기관·보험사와 연계돼 있고, 해킹 등에 대비한 보안 시스템도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전송위탁기관으로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를 위한 진료 정보를 심평원에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비급여 진료 현황이 심평원에 노출되면 이내 감시하에 놓이게 될 것이고, 곧 심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함께 낸 입장문에서 “공적인 보험심사를 하는 심평원에 실손보험 청구업무를 위탁하는 것은 자동차보험 선례를 보면 결국 심사까지 하게 되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동차보험은 교통사고 피해자의 의료비가 의료기관에서 심평원을 통해 보험사로 직접 청구된다. 이 중간에서 심평원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가 없었는지 적정성을 심사하고, 경우에 따라 진료비를 삭감한다. 이러한 탓에 의료기관은 보험사로부터 환자 진료비를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보험업계와 시민사회단체 역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이후 비급여 통제는 수순으로 여기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서는 비급여 표준화가 필요하고, 표준화하면 보험사는 어떤 의료기관이 비싼 의료비를 받는지, 과잉진료를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며 “정보가 쌓이면 보험금 지급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원장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1단계 목적은 소비자의 불편을 덜어주는 것이고, 2단계는 비급여를 모니터링해 의료비를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가격통제를 받지 않는다. 의료계는 원가 80% 수준만 보장하는 급여로 인한 적자를 비급여로 메꾸고 있다. 비급여까지 통제를 받게 되면 당장의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의료계가 심평원을 중개기관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보장성 강화 정책인 일명 ‘문재인케어’ 등을 위해 2019∼2023년 41조원을 투입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2017년 기준 62.7%에서 2023년 70.0%로 높일 계획이다. 의료계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2017년 기준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한 의료비는 52조5000억원, 비급여는 14조3000억원이다.

◇심평원 안 되면 보험개발원? 신용정보원? ICT기업?

금융당국도 의료계의 주장에 일면 공감하고 복지부와 다른 대안도 모색하고 있다. 현재 전송위탁기관으로 언급되는 곳은 보험개발원, 신용정보원, ICT기업이다.

다만 이들 기관이 전송위탁기관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모든 의료기관·보험사와 연계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스템 구축에 따른 비용과 시간이 든다.

특히 ICT기업을 전송위탁기관으로 삼으면 비용에 대한 부담도 따른다. 현재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서류 정리 등의 업무 부담이 줄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용은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ICT기업이 난립해 과도한 수수료 등을 요구하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보안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빈틈없는 보안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정보는 특히 민감한 정보로 분류된다. 의료정보가 새면 평생 보험 가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인 사생활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심평원이 전송위탁기관으로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기관인데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며 “필요하면 법안에 심평원이 비급여 등 관련 의료정보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으려고 하는데, 해법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심평원이 어려우면 보험개발원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복지부와 자주 만나 지금까지 제시된 내용을 다시 고민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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