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자신의 분변을 감추려는 이유

노트펫

입력 2019-05-07 09:06 수정 2019-05-0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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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펫] 고양이가 지금처럼 사람과 같이 살기 전에는 엄연한 야생동물이었다. 그런데 야생의 고양이는 체구가 작은 포식자(predator, 捕食者)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양이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먹이피라미드(food pyramid)의 정점이 아닌 중간 정도였다.

이는 고양이의 사냥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고양이는 어느 포식자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탁월한 사냥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맹수가 되기에는 신체적으로 분명한 한계를 가진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공생(共生)하기 전의 고양이는 포식자의 신분이었지만, 더 강한 동물에게 잡아먹힐 수 있는 피식자(prey, 被食者)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고양이는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고양이가 경계심을 잃는 순간은 이승에서의 생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육식동물 상당수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극강의 포식자가 아니라면 포식자 겸 피식자가 된다. 강력한 이빨을 가진 남극의 포식자 얼룩무늬물범(Leopard seal)은 펭귄을 잡아먹는 포식자지만, 천적인 범고래(killer whale) 앞에는 기름기 많고 맛있는 200~600kg짜리 고기일 뿐이다.

고양이는 위생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동물이다. 고양이는 지속적인 혓바닥 그루밍을 통해 자신의 몸에서 다른 동물들이 인지할 수 있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노력으로 지울 수 없는 냄새도 있다.

고양이의 대소변 냄새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고양이의 분변에서 많은 냄새가 나는 이유는 고양이가 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포함한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들은 배설을 통해 체내에 축적된 암모니아를 배출한다.

하지만 포식자 겸 피식자인 고양이는 배설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서는 안 된다. 이는 포식자로서나 피식자로서나 모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분변에서 강한 냄새가 풍기면 포식자로서 먹이 확보에 좋지 않다. 먹잇감들이 고양이의 대소변 냄새를 맡고 그 근처에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먹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자칫하면 자신의 영역에서 아사(餓死)할 수도 있다.

둘째, 분변에서 풍기는 냄새는 피식자인 고양이가 자신의 천적들에게 위치를 노출하는 것과 같다. 맹금류나 더 큰 포식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다.


고양이는 분변에서 풍기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다른 것을 그 위에 덮어서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 그래서 볼일을 보기 전에 앞발로 땅이나 모래를 파고 그 구멍에 일을 본다. 일을 마치면 흙이나 모래를 그 위에 덮어둔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인간의 품 속에 들어온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누구도 고양이를 잡아먹기 위해 아파트 문을 열고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먹이도 직접 구할 필요가 없다. 주인이 알아서 밥도 챙겨준다. 굶어죽을 일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아파트 고양이들은 배변에 앞서 땅을 파는 시늉을 하고, 배변 후에는 뭐라도 덮어줄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고양이에게는 야생의 본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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