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저소득층 ‘급전 끌어쓰기’… 카드 연체액 1년새 17% 증가

조은아 기자 , 세종=송충현 기자

입력 2019-05-07 03:00 수정 2019-05-0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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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 빠진 바닥경기]제2금융권 ‘연체 경고등’


50대 택시기사 박모 씨는 2년 전만 해도 월 소득이 200만 원을 넘었지만 요즘엔 150만 원을 겨우 번다. 생활비가 급해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얼마 전부터 연체되기 시작했다. 한 달 소득에서 대출 원리금을 빼고 매달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다 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박 씨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 사정이 어려워지니 서비스업인 우리도 타격을 입고 있다”며 “차라리 다 포기하고 개인회생을 신청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둔화로 고전하는 서민들이 카드회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빚을 냈다가 제때 돈을 갚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카드론이나 약관대출 등 2금융권 여신은 저소득층이 급전 마련을 위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불황기에 늘어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런 대출에 부실이 생긴다는 것은 경기침체에 따른 부정적인 여파가 서민층부터 본격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경기가 더 꺾이면 제조업이나 자영업 침체가 발생하는 지방을 중심으로 금융 부실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카드사, 저축은행, 상호금융 부실률 동반 상승

지금 금융권에서는 카드회사와 저축은행, 지방은행 등 2금융권 곳곳에서 대출 부실이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6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 등 주요 7개 카드사의 올해 3월 말 연체율(대환대출 포함)은 카드사별로 1.10∼2.55%였다. 지난해 같은 시기 연체율(0.86∼2.23%)보다 모두 상승했다. 이에 대해 일부 카드사는 “법인 신용판매 등 저수익 자산을 줄여 연체율이 오른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연체율 상승에는 서민들이 그만큼 빚을 갚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7개 카드사의 1개월 이상 연체액은 지난해 말 1조3714억7000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16.5% 증가했다.

저축은행의 연체율도 최근 많이 올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79곳의 부실채권비율(고정이하여신 기준)은 지난해 말 평균 5.99%로, 전년(5.38%)보다 0.61%포인트 올랐다. 부실채권 비중이 10%를 넘는 저축은행도 2017년 7개였는데 작년에는 9개로 늘었다. 심지어 경북의 한 저축은행은 이 비중이 50%를 넘었다.

최근 2년간의 실적통계가 있는 전국 신협 886곳을 보면 부실채권 비중이 지난해 말 평균 1.99%로 2%에 육박했다. 전년(1.71%)에 비해 0.28%포인트 오른 수치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로 저축은행 대출은 자영업자들이, 카드론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2금융권에서 부실 비중이 높아지는 건 그만큼 밑바닥 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부실 대출이 많아지는 금융회사들은 앞으로 건전성 관리를 위해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 경우 대출의 벽이 높아져 사채시장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이 늘어나게 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장 2금융권의 대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자니 서민들이 대부업과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조업 침체 지역은 자영업자 위험

제조업 침체의 골이 깊은 지방에선 자영업자의 연체가 늘고 있다. 전북 군산에서 식재료 공장을 운영하는 문모 씨(44)는 지역 경기 침체로 연 매출이 3년 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고도 매달 300만 원의 운영비를 대지 못해 은행 대출을 일으켰고 지금은 그 한도가 다 차버려 연리 24%인 일수를 쓰고 있다. 문 씨는 “주변 사람들이 대거 실직해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며 “나도 10년 넘게 운영한 공장 문을 차마 닫질 못해 대부업체와 사금융을 쓰며 버틴다”고 말했다.

경남 거제 지역의 한 신협 임원은 “지역이 비어가고 금융회사들도 개점휴업 분위기”라며 “기업들의 임금체불이 심각해 사람들이 제도권 금융회사들에서 사금융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같은 2금융권 내에서도 수도권과 지방의 부실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도권 우량 저축은행과 지방 저축은행 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방은행 부실 우려도 있어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방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면서 저신용자에 대한 지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반기에 경기가 더 안 좋아지면 연체가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이 늘어날 수 있다”며 “신용등급 8등급 이하 서민들을 구제할 정책 금융상품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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