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은 국가의 ‘비상금’

이홍기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교수

입력 2019-05-07 03:00 수정 2019-05-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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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읽는 경제교실]


Q. 신문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가 넘어 세계에서 8번째로 많다고 해요. 외환을 갖고 있는 이유는 뭔가요?

A. 갑자기 큰 사고가 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급히 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부모님들은 저축을 해둡니다. 일종의 비상금인 셈이죠. 국가도 비상금을 잘 관리해야 위기 상황을 별 탈 없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할 만큼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만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보유액이 39억 달러까지 떨어지면서 국가가 부도를 맞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급히 돈을 빌려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IMF 구제금융 사태’라고 합니다. 부족한 외화를 채우기 위해 국민들은 소중히 간직하던 금붙이를 가지고 나오는 ‘금 모으기 운동’도 벌였습니다. 그렇게 온 국민이 노력한 결과 3년 8개월 만에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눈물 나는 기억을 떠올려 보면 넉넉한 비상금이 개인이나 국가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외환보유액이란 한 나라의 최종적인 대외지급준비자산입니다. 쉽게 말하면 긴급한 경우 사용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외화(외국 돈) 비상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이 자금은 바로 사용할 수 있거나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유가증권, 예치금 등의 자산으로 관리하다 긴급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현금으로 인출해 활용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금융시장의 대외 개방도가 높아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해외 경제와 연계성이 높고 외국 자본의 유출입도 자유로워 해외로부터의 충격이 수시로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충격을 적절히 흡수하고 급격한 자본 이동에도 대비할 수 있는 최종적인 안전장치인 외환보유액은 경제위기를 미리 방지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아두면 당연히 이점이 많습니다. 방금 보았듯 외환보유액은 위기 상황에서 경제의 든든한 안전판 역할을 합니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국제 금융시장이 위축돼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자금 사정이 악화되는 경우 외환보유액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가는 등 급격한 자본 이동으로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단기간에 널뛰기를 한다거나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지는 경우에 외환 및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 충분한 외환보유액은 국가의 대외신인도와 국가 신용등급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국가 신용등급이 높으면 외국인투자가들은 안심하고 우리나라에 투자할 수 있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에서 사업을 하며 돈을 빌릴 때 좀 더 싸고 쉽게 빌릴 수도 있는 등 다양한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외환보유액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외환보유액의 이점이 많다고 해서 무턱대고 늘릴 수는 없습니다. 외환보유액을 쌓고 유지하는 데도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외환보유액은 경제위기 등에 대비한 보험인 만큼 일정 수준의 비용은 부담할 가치가 있지만 그 보유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면 실익이 줄어들겠죠.

우리나라는 외환위기에 처한 경험이 있는 데다 대외개방도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다는 특수 사정도 있습니다. 따라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처럼 외환보유액을 앞으로도 넉넉하게 쌓아 비상시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보유 외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국제금융시장에서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또 최종적인 대외지급준비자산으로서의 중요성을 고려해 외환보유액의 안전성과 유동성 확보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험이 큰 자산에 대한 투자는 엄격히 제한하며 국제금융시장에서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유동성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4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은 위기 시 필요한 안전판 역할을 하는 만큼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홍기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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