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공연티켓이 560만원? 팬 울리는 리셀 타짜들

김자현기자 , 김소영기자 , 신아형 기자

입력 2019-05-04 03:00 수정 2019-05-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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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암표상 티켓 리셀러 기승

‘5만 원, 7만 원, 11만 원.’

지난달 18일 오후. 대학생 이민우 씨(23)는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액의 영화 티켓 가격을 보게 됐다. 이 씨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영화 티켓을 구하는 중이었다. 같은 달 24일 개봉 예정이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티켓 예매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씨가 예매하려 했던 서울 용산의 CGV 아이맥스관은 개봉 당일 조조부터 심야 상영까지 전석이 매진된 상태였다. 아무리 그래도 영화 한 편 보는 데 11만 원이라니…. 이 씨는 당황스러웠다. CGV 용산 아이맥스관 티켓 정가는 2만3000원. 정가보다 최고 5배 가까이 비싼 티켓이 예매 첫날부터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것이다.

예매 첫날부터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영화 티켓을 되팔겠다는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티켓을 예매한 뒤 온라인에서 되파는 ‘티켓 리셀러(reseller)’들이 올린 글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열성 팬인 이 씨는 약간의 웃돈을 주고 티켓을 구매할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리셀러들이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려놓은 가격은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화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BTS), 엑소(EXO)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나 뮤지컬, 프로스포츠의 ‘빅 매치’ 등도 티켓 재판매를 노리는 리셀러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이다. ‘프리미엄’이란 딱지를 붙여 웃돈을 받고 티켓을 재판매하는 리셀러들은 온라인 플랫폼 활성화와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 VIP석 잡으면 ‘잭팟’

BTS를 비롯한 인기 아이돌 그룹의 공연 티켓은 대개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 5분 정도면 매진된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적게는 수십 배, 많을 땐 100배 이상 부풀려진 티켓 가격으로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나 티켓 리셀 사이트에 올라온다. 리셀러들 사이에선 ‘BTS 콘서트 티켓 예매에 성공하면 한 달 월급을 벌 수 있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이렇다 보니 티켓 리셀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욕먹어도 돈이 좋다’며 재판매를 목적으로 한 티케팅에 나서는 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일명 ‘플미충’(프리미엄+충) ‘플미꾼’(프리미엄+꾼)으로 불린다. 공연을 직접 볼 생각은 없고 티켓을 되파는 것이 목적인 ‘꾼들’이다.

인기 공연일수록 리셀계의 타짜들이 많이 몰린다. BTS, 워너원 등 열성 팬이 많은 인기 아이돌 그룹의 공연 티켓 값은 천정부지로 뛴다. VIP석 하나를 건지면 말 그대로 잭팟이다. 지난해 BTS 등이 출연한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의 입장 티켓은 무료였다. 하지만 좌석이 한정된 탓에 재판매 가격은 150만 원까지 치솟았다. 다음 달 15일로 예정된 BTS의 팬미팅을 겸한 공연 티켓은 정가가 8만8000원이다. 하지만 이달 2일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이 티켓을 무려 560만 원에 되팔겠다는 게시글도 있었다. 티켓 리셀러들이 아이돌 그룹 공연에만 관심을 두는 건 아니다. 6월로 예정된 가수 나훈아의 ‘2019 청춘어게인’ 공연 티켓은 정가의 5배 가까운 값에 거래사이트에 나왔다. 정가가 16만5000원인 티켓을 80만 원에 팔겠다는 리셀러의 게시글이 있다.

재판매 티켓이 거래 사이트에 올려놓은 가격대로 모두 팔리는 건 아니다. 구매자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일단 비싼 값에 올려놓고 보는 리셀러들도 있어 실제 판매 가격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인기 공연의 VIP석은 200만∼300만 원에 거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리셀러들은 티켓 예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매크로를 동원하기도 한다. 매크로는 사람이 해야 하는 반복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 하도록 해 작업 효율을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사람이 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해 티켓 예매 전쟁터에서 효자 노릇을 한다. 일단 표를 구한 리셀러는 그때부터 바로 ‘갑’이다. 좋은 좌석을 손에 넣은 리셀러들은 재판매 가격을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 구매 희망자들을 모아놓고,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이 표를 갖도록 경매에 부친다. 부르는 게 값이다.

○ 리셀 두고 논쟁 벌어지기도

리셀 시장이 커지면서 불법 논란도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래퍼 허클베리피(본명 박상혁·35)와 리셀러 A 씨는 티켓 재판매를 두고 온라인에서 공개 논쟁을 벌였다. 허클베리피는 당시 트위터에 자신의 공연 티켓을 프리미엄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A 씨를 언급하며 “남의 콘텐츠로 법망 요리조리 피해서 돈 챙기는 거지××가 뭐 이렇게 당당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A 씨가 반박하고 나섰다. A 씨는 “온라인을 통해 거래되는 유가증권 형태의 공연 티켓 상거래는 불법이 아니다”라며 “암표가 아닌데 오히려 허클베리피가 특정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한다”고 맞받았다. 노력해서 티켓 예매라는 경쟁에서 이겼고, 이런 노력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웃돈을 붙여 판매하는 건 정당한 상거래라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티켓 구매자인 팬들은 속이 탄다. 팬들은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PC방에 가서 초시계를 켜두고 예매 시작 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티켓 예매에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면 팬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예매 취소 표를 찾아 온갖 사이트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예매가 취소된 티켓마저 리셀러들이 채가는 경우가 흔하다.

콘서트 주최 측은 팬들을 위해 팬클럽에 가입된 회원들에게만 티켓을 사전 예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리셀러들의 티켓 사냥을 막지는 못한다. 리셀러들이 팬클럽 회원으로 가입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리셀러들은 팬클럽의 공공의 적이 됐다. EXO 팬 최가연 씨(23·여)는 “EXO 콘서트를 4번 봤는데 3번은 예매를 하지 못해 재판매 티켓을 사서 봤다”며 “세 번 모두 10만 원대 티켓을 30만 원가량 주고 사야 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플미충이 갈수록 늘어나니 진짜 팬들은 점점 더 티케팅이 어려워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공연진의 생각도 팬들과 다르지 않다. 티켓 재판매는 팬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행위라는 것이다. 래퍼 B 씨(29)는 리셀러들에 대해 “불특정 다수가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내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순수함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티켓 리셀러들이 공연 문화를 망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돈벌이 목적의 리셀은 투기 성격이 짙다”며 “이런 현상이 만연하면 개인의 문화 향유권이 박탈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 법을 만들어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티켓 리셀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한 경매사이트에서는 2016년 미국프로농구(NBA) 결승전 티켓이 우리 돈 약 5800만 원에 팔렸다. 작년엔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티켓을 높은 가격에 재판매한 레알 마드리드 팬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리셀링은 해외에서도 종종 논란이 되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티켓 재판매 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나라들이 생기고 있다. 네덜란드의 리셀 전문 업체 티켓스와프(TicketSwap)는 자체적으로 리셀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리셀 자체는 허용하되 티켓 정가보다 20% 이상 더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리그 참가 구단이 지정한 리셀 사이트에서만 표를 되팔 수 있도록 했다. 구단과 협약을 맺은 곳 외에 다른 사이트에서 경기 티켓을 되파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는 것이다.

미국은 2016년 ‘더 나은 온라인 티켓 판매 행위를 위한 법안’을 만들어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한 티켓 구매자 등을 처벌하고 있다. 캐나다도 지난달부터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 구매와 재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섰다.

○ 온라인 티켓 재판매 처벌 근거 없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온라인에서의 티켓 재판매를 제재할 수단이 없다. 매크로를 사용해 티켓을 예매한 뒤 되팔아도 처벌할 수 없다. 경기장 주변 등 오프라인에서의 암표 판매 행위는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과료의 형에 처한다.

이처럼 온라인에서의 티켓 재판매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 보니 팬들은 공연 주최 측에 “플미충을 잡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또 팬카페에서 ‘플미충 괴롭히기’ 매뉴얼을 공유하며 사적 보복에 나선다. 단체로 티켓 거래 사이트 등에 댓글을 달아 리셀러들을 사기꾼으로 몰고 가는 식이다.

최근 영화 어벤져스 티켓의 리셀이 성행하자 CGV 측은 사이트에 ‘예매 티켓 재판매 관련 공지’를 띄웠다. 예매 티켓 재판매자에 대해 회원 강제 탈퇴 및 예매 취소 조치를 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와 리셀 사이트 등에서는 여전히 CGV 용산 아이맥스관의 티켓이 5만 원대에 팔리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의 티켓 재판매와 매크로를 동원한 티켓 예매 등을 두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20대 국회에서만 10여 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대부분 온라인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구입한 티켓을 거래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리셀러가 많아지면서 티켓 사기도 늘고 있다. 직장인 김모 씨(27·여)는 3월 말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박모 씨(여)로부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티켓 2장을 34만 원에 구매했다. 장당 정가는 12만6000원이었지만 웃돈을 얹어주고 산 것이다. 김 씨는 예매가 힘들기로 유명한 공연이라 웃돈 5만 원가량을 더 주는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기였다. 박 씨는 김 씨에게 팔겠다고 했던 티켓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팔겠다고 했고, 여기저기서 티켓 값을 받아 챙긴 것이다. 박 씨에게 사기를 당한 한 피해자가 정보 공유를 위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개설하자 피해자들이 대거 몰렸다. 박 씨에게 공연 티켓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는 60명이 넘었다. 피해액은 2000만 원에 달했다. 리셀이 개인 간 거래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티켓 재판매자의 사기 전력 등을 확인하기가 힘들다.

김 씨처럼 온라인에서 사기 범죄 피해를 당하는 사례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온라인 사기 사례 가운데 티켓 사기가 포함되는 개인 간 거래·기타 항목의 사기 사건 건수는 2014년 5만3295건에서 2018년 10만1606건으로 4년간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김자현 zion37@donga.com·김소영·신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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