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영]극단 치닫는 재건축 갈등… 서울시, 소통부터 나서라

김재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19-05-01 03:00 수정 2019-05-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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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2부 차장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 잠실 쪽을 지나다 보면 아파트 꼭대기에 내걸린 붉은 바탕의 플래카드가 눈에 확 띈다. ‘박원순 (서울시장) 거짓말쟁이’ ‘청와대 눈치가 웬 말이냐’ 등의 내용도 살벌하다. 플래카드를 내건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조합은 지난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재건축 허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불만이 있어도 시장에게 인신공격성 비난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재건축으로 큰돈 벌려는 탐욕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주민들의 불만도 이해할 만하다. 법적 요건을 맞추지 못하거나 절차를 무시하면서 생떼 쓰듯 재건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 요구에 따라 계획을 변경해 신청하면 시는 또 다른 이유를 들어 심의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를 시의 ‘갑질 행정’이라고 부른다.

1978년 입주한 잠실주공5단지는 최고 50층 규모의 재건축 계획을 추진했지만 2017년 2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보류 판정을 받았다. 그해 9월 서울시는 50층 재건축을 허가해주는 조건으로 공공성과 창의성을 살려 국제설계 공모를 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3월 시는 당선작을 선정했고 그해 6월 조합도 이를 채택했지만 이후 도계위에 안건이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2차 시위를 벌인 강남구 은마아파트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0년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 사업 추진 요건을 갖췄지만 첫 관문인 도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최고 49층 재건축 계획을 접고 시의 층수 제한에 맞춰 35층으로 낮췄다. 임대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는 등 시의 수차례 계획 변경 요구도 수용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도계위에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벌써 다섯 번째 퇴짜다.

박 시장과 서울시 역시 고민이 많다는 점은 이해한다. 지난달 8일 박 시장은 ‘골목길 재생 시민정책대화’ 인사말에서 “저를 상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층고를 높여 달라, 용적률을 높여 달라 (요구하는지 아느냐)”며 “여러분은 제가 피를 흘리고 서 있는 게 보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시가 쉽게 재건축 승인을 내주지 못하는 것은 집값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두 단지는 강남의 대표적인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다. 집값 안정에 다걸기를 하는 정부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박 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을 언급했다가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서 긴급 진화에 나섰던 트라우마도 있다.

그렇다고 차일피일 심의를 늦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시가 먼저 소통에 나서야 한다. “시를 믿고 하라는 대로 다 했으니 이젠 약속을 지키라”라는 주민들의 호소에 답을 할 책임이 있다. 현실적으로 승인이 어렵다면 솔직하게 밝히고 향후 계획과 대책을 마련해 설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 실무자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며 반발을 무마하기 바쁘다. 시장은 “당장 강남 재건축은 어렵다”고 선을 긋는다.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오락가락이다. 이런 식으론 신뢰를 얻기 어렵다. 무리한 요구에 시장이 피를 흘려서도 안 되겠지만, 주민들의 피눈물을 마냥 외면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김재영 산업2부 차장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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