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붙어보는 방’…보수적인 DNA 버리고 젊은 문화 입는 금융사들

장윤정기자

입력 2019-04-30 17:13 수정 2019-04-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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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빨리 끝내는 방(무조건방)’ ‘계급장 떼고 붙어보는 방(계떼방)’ ‘모두 다 얘기를 해야 하는 방(모다방)’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건너편의 남산 센트럴타워에 있는 우리은행 디지털금융그룹. ‘틀을 깨는 혁신을 위해선 공간부터 달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본점에서 떨어져 나온 이곳은 마치 스타트업을 연상시켰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대형은행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무실 내부에는 칸막이와 개인 책상 대신 원형 테이블과 오픈 회의실이 눈에 띄었다. 고객들에 신뢰를 주기 위해 ‘칼 정장’에 단정한 모습으로 사무실을 누볐던 은행원들은 청바지와 티셔츠 등 자유로운 복장으로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을 오갔다. 오픈 회의실엔 ‘계떼방’, ‘무조건방’ 같은 재미있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 황원철 우리은행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직원들이 칸막이 등 당연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사들이 디지털과 핀테크 열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수적인 DNA를 버리고 다양한 실험을 벌이고 있다. 외부 인재를 수혈하고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애자일(agile·민첩한)’ 조직을 만드는 등 조직 문화 전반을 대수술하고 있다.


●메기 효과노린 외부인재 수혈

그동안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외부인력에게 문을 열지 않던 은행들이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 조직을 바꾸기 위해서는 ‘메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KB금융은 4월 1일 윤진수 전 현대카드 상무를 데이터전략본부장(전무)으로 영입했다. 윤 전무는 은행 본부장과 KB금융 데이터총괄임원(CDO), KB국민카드 데이터전략본부장을 겸하며 빅데이터 분석·활용 업무를 총괄할 예정이다. 우리금융지주도 지난해 황원철 전 하나금융투자 상무를 CDO로 영입한 데 이어 3월 정보통신기술(ICT)기획단을 신설하고 단장에 노진호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한 애자일 조직도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2017년부터 운영 중인 ‘에이스(ACE)’팀은 지금 14개가 가동 중이다. 부서 간 경계를 넘어 3~5명의 젊은 직원들이 모여 금융소비자들의 변화를 감지하고, 복잡한 의사결정 단계를 건너뛰고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는 게 목적이다. KB국민은행의 대화형 뱅킹 앱 ‘리브똑똑’, 비대면 전문상담 브랜드 ‘스타링크(Star Link)’ 등은 모두 ACE 조직의 작품이었다.

신한금융도 1월 ‘원 신한 DNA 팀’이라는 조직을 신설했다. 신사업과 플랫폼, 공동마케팅, 상품·서비스 등에 대해 지주 차원에서 협업 기회를 발굴하는 게 목표다. 신한금융은 하반기에 아예 애자일 본부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과감한 실험들 이어져

혁신에 대한 절박감이 커지면서 과감한 실험들도 출현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은행의 모바일뱅킹 서비스 ‘위비뱅크’의 오픈뱅킹. 아직은 위비뱅크가 각종 핀테크 서비스를 안내하고 앱으로 연결해주는 수준이지만, 올 여름이면 굳이 해당 핀테크 앱을 일일이 다운로드 받지 않아도 위비뱅크를 통해 바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신용관리 서비스 ‘알다’, 자동차보험 비교서비스 ‘차봇’ 등 11개 핀테크 서비스가 이용 가능하다.

황원철 CDO는 “이렇게 시스템을 통합하면 고객들이 어떤 서비스를 선호하고 실제 어떤 금융거래를 하는지를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은 알뜰폰을 기반으로 금융과 통신이 결합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앞으로 국민은행 고객은 지점에서 계좌를 개설하듯이 알뜰폰에 가입하고, 은행·카드 등 금융 거래 실적에 따라 통신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은 인재 채용방식을 바꿨다. AI(인공지능) 사업을 추진하던 ICT출신의 디지털 전문가를 채용팀장으로 임명하고, 이 분야 우수인재를 연중 수시로 채용한다. 진옥동 행장도 “과거엔 상경계열 인력을 뽑아서 IT에 배치했다면, 이제 IT인력을 뽑아 영업을 가르치면 될 것”이라며 디지털 인재 채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장윤정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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