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쏜 세탁기 관세폭탄, 美 소비자들이 더 신음

뉴욕=박용 특파원

입력 2019-04-23 03:00 수정 2019-04-23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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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준-시카고대 ‘그후 1년’ 연구
고관세 영향 제품가 11% 뛰어… 월풀 등 미국산도 덩달아 인상
美 재무부 935억원 벌었지만 소비자 부담 1조7100억원 늘어
생산-일자리 증가 효과도 미미



“한국이 한때 좋은 일자리를 창출했던 우리 산업을 파괴하며 세탁기를 미국에 덤핑한다.”

지난해 1월 17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닷새 후 미 무역대표부(USTR)가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그해 2월 수입산 세탁기에 20%의 관세를 부과했고 수입산 관세할당물량(TRQ) 120만 대를 넘어선 연말경 관세를 50%로 올렸다.

1년 이상 지난 지금 미국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트럼프 세탁기 관세’가 미국 내 생산과 일자리를 높인 효과는 미미한 반면 소비자들의 부담을 키우고 미국 세탁기 회사의 배만 불려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미 소비자 부담 1조7100억 원 증가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1일 시카고대 및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구팀의 최근 연구를 인용해 “세탁기 관세가 재무부에 8200만 달러(약 934억8000만 원)를 벌어줬지만 소비자가격 15억 달러(약 1조7100억 원)를 상승시켰다”고 전했다.


소비자 부담이 커진 것은 고율 관세로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 세탁기와 건조기 가격이 각각 11.5% 상승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해 세탁기 관세 부과로 세탁기와 건조기 가격이 각각 86달러(약 9만8000원), 92달러(약 10만4800원) 올랐다. 소비자들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동시에 구매한다는 점을 고려해 세탁기 회사들이 세탁기 가격을 한꺼번에 올리지 않고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닌 건조기 가격을 동시에 올려 충격을 흡수한 것이다.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닌 미국산 세탁기까지 가격을 덩달아 올리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졌다. 연구팀의 펠릭스 틴텔롯 시카고대 경제학과 조교수는 “가격 인상은 미국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부당하게 이용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월풀이 가격을 올려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로 했을 때 월풀의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미국의 신흥 세탁기 회사들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 관세 폭탄은 ‘비싸고 비효율적’


세탁기 관세는 월풀이 2017년 5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한국산 세탁기가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파괴하고 일자리를 없앤다며 세이프가드 조사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관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 “비싸고 비효율적 방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월풀의 시장 점유율은 세이프가드 발효 이전보다 1%포인트 떨어진 15%대에 머물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관세를 피해 각각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지어 일자리 1600개를 만들었다. ‘트럼프 세탁기 관세’의 최대 수혜자인 월풀은 오하이오주 공장에서 일자리 200개를 늘렸다. 연구팀은 일자리 1개당 미국 소비자들이 81만7000달러를 부담했다고 분석했다. NYT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과거 연방 경기부양법(ARRA)으로 고용을 창출할 때 들인 비용과 비교해 “트럼프 대통령이 세탁기 관세로 일자리 하나를 만들 때 오바마 대통령은 6.5개를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으로 미 제조회사와 농민 등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세탁기 관세가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제3국 생산을 늘리고 소비자 부담만 키웠다는 논란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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