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 “영성과 생명의 새 성전 거듭날 것”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4-16 03:00 수정 2019-04-16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최근 6번째 예배당 완공

1887년 9월 서울 중구 정동 한 한옥에서 언더우드 선교사(1859∼1916)의 주재 아래 한국의 첫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창립했다. 서울 도심에서 132년 동안 근현대사를 지켜보고 여러 위인을 낳은 이 교회가 1972년 건축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여섯 번째 예배당을 최근 완공했다.

2017년 가을 새문안교회에 부임한 이상학 담임목사(55)는 “새 예배당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하다고 자평한다”며 “새문안교회가 더 큰 책임성을 가지게 됐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10일 말했다.

새 예배당은 대지 면적 약 4200m²(약 1270평), 연면적 약 3만1900m²(약 9650평)에 지하 6층, 지상 13층 규모로 2300석의 대예배실과 교육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기존 건물은 본당이 1000석 규모여서 출석한 교인 5000여 명이 5부로 나눠 예배를 봐야 했지만 재개발 구역이어서 증축이나 리모델링은 불가능했다. 새 교회 건물 1층 새문안홀은 주민과 사회를 향해 문을 열어놓고 공연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널찍한 교회 마당 역시 인도와 구분 없이 개방돼 있다.


―새 건물 외관이 화려해 보인다.

“밖에서 보면 어머니가 팔을 벌린 듯한 조형미가 있고, 웅장하고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안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외벽 마감재(사비석)를 비롯해 저렴하고 실용적인 자재를 썼다. 신축을 계기로 책임을 절감하며 더욱 진정한 마음으로 사회에 다가갈 것이다.”


―새문안교회 역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는다면….

“복음과 민족, 백성의 만남이다. 1885년 4월 5일 인천에 입국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토착 기독교인들을 만나 교회를 세웠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언더우드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당을 만나 서구 문물에 눈떴고,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에서 자란 우사 김규식 박사가 독립운동을 벌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축이 됐다. 한국의 백성이 고통스러운 나락에 떨어져 돌파구를 찾을 때 선교사의 복음이 영적 상상력과 구원의 출구를 제공했을 것이다.”


―1919년 당시 인구의 2%도 안 됐던 기독교인이 3·1운동을 이끌었던 바탕은….

“평안도 중심의 민초적 기독교와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한 선각자적 기독교가 있었는데, 3·1운동 당시 절묘하게 만나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고 본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경건한 기독교인을 기르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임무지만 예수, 나라, 민족 사랑이 합쳐진 한국 초기 기독교회로부터 배울 점이 오늘날도 있다. 새문안교회는 어려움에 처한 한국 백성을 구하기 위해 교육과 계몽, 문화 사업을 펼쳤다. 애국 애족하는 신앙을 아름답게 이어 가겠다. 좋은 ‘임팩트’를 주는 신앙의 선각자를 키우고 싶다.”


―교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지….

“영성과 생명이 내 화두다. 기계 문명의 극단화 속에 영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종교의 본질은 결국은 절대자와의 만남이라고 본다. 그것을 돕고자 한다. 반생명적이고 반인격적인 현대 문명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캠페인도 벌이고 싶다.”


―최근 종교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운가’ 같은 비판이 나오는 게 부끄럽지만 사실무근도 아니다. 자성해야 한다. 또 한국은 모든 고등 종교에 치병, 기복 같은 샤머니즘의 영향이 있다. 이런 요소를 극복해야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