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기정]25년 전 일본과 오늘의 한국
고기정 경제부장
입력 2019-04-15 03:00 수정 2019-04-17 14:01
과거 日발목 잡은 관료제와 규제…지금 우리와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은행 점포의 수와 인원까지 지시하는 ‘점포행정’은 금융회사 조종의 최대 도구다. 그 결과 중소 금융회사들은 금융당국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면 당연히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간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우량 은행들은 (진입 규제의 틀 안에서) 편안한 조건으로 영업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의 뜻을 받아들인다.”(관료 출신 금융회사 임원)
“공원 하나를 만들거나 재개발사업을 하거나 간에 인허가를 얻기 위해선 몇 번씩 중앙정부로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보조금 신청 서류를 작성하는 데만 직원 전체가 하는 일의 20% 정도를 빼앗긴다. 여기에다 중앙정부에서 위임한 사무를 합하면 중앙정부와 관련된 일이 전체의 7할이나 된다. ‘3할 자치’라는 말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지자체장 출신 정치인)
어떤가. 2019년 한국을 묘사했다고 생각한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위 사례는 25년 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일본의 ‘관료망국론’에서 발췌한 것이다. 문부성을 교육당국으로, 대장성을 금융당국으로 바꿨을 뿐이다. 원저는 1993년 출간됐다. 일본은 그 전해인 1992년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세계 최초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바로 그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기업들이 부실화하면서 잃어버린 20년 터널에 진입했다. 이건 그 당시의 기록이다.
책이 나올 때쯤 ‘저팬 배싱(일본 때리기)’은 글로벌 유행이다시피 했다. 한국 언론도 ‘일본 실패학’을 보도하곤 했다. 일본 경제가 가라앉은 게 어디 관료들만의 책임이겠는가. 그럼에도 당시 자료를 들여다보면 플라자협정에 따른 엔화 가치 급등,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다른 요인보다 ‘규제 지옥’을 만든 일본 관료사회를 꼬집는 글들이 많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 경제 위기 보고서’에서 일본이 실패한 첫째 이유로 광범위한 규제 등 일본식 정부 모델의 한계를 지목했다. 오죽하면 일본 후생성 소속의 한 의사는 미국에 건너가 “미국이 압력을 넣어 일본의 관료제도를 바꿔 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동아일보 1995년 2월 12일자)
관료와 규제는 한 묶음이다. 공무원이 바뀌지 않고는 규제가 바뀌지 않는다. 한국도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 혁파를 주장했지만 규제가 개선되지 않는 건 그것을 쥐고 있는 공무원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규제망국론’이 아닌 ‘관료망국론’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게다. 현 정부가 최근 들어서야 규제 샌드박스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은 규제 해소가 요원하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어느 시대의 (경제)부총리인지 모르겠다”고 한 건 현장의 체감규제가 어떤 수준인지 말해준다.
“모든 산업은 어떤 부처의 과(課)에 등록돼 보호 육성 규제를 받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청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면 이 산업을 어느 부처가 가져가서 지배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부처 간에 사투가 벌어진다. 주무 과가 돼 인허가권을 손에 넣으면 반드시 하나 둘 관련 단체가 만들어지고, 그 단체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낼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고기정 경제부장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학원을 다닌다. 아이들이 두 개의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그중에 하나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방치되고 있는 건 교육당국의 무능력에서 비롯한다. 그런 관청은 필요 없지 않은가.”(민간연구소 관계자)“은행 점포의 수와 인원까지 지시하는 ‘점포행정’은 금융회사 조종의 최대 도구다. 그 결과 중소 금융회사들은 금융당국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면 당연히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간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우량 은행들은 (진입 규제의 틀 안에서) 편안한 조건으로 영업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의 뜻을 받아들인다.”(관료 출신 금융회사 임원)
“공원 하나를 만들거나 재개발사업을 하거나 간에 인허가를 얻기 위해선 몇 번씩 중앙정부로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보조금 신청 서류를 작성하는 데만 직원 전체가 하는 일의 20% 정도를 빼앗긴다. 여기에다 중앙정부에서 위임한 사무를 합하면 중앙정부와 관련된 일이 전체의 7할이나 된다. ‘3할 자치’라는 말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지자체장 출신 정치인)
어떤가. 2019년 한국을 묘사했다고 생각한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위 사례는 25년 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일본의 ‘관료망국론’에서 발췌한 것이다. 문부성을 교육당국으로, 대장성을 금융당국으로 바꿨을 뿐이다. 원저는 1993년 출간됐다. 일본은 그 전해인 1992년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세계 최초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바로 그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기업들이 부실화하면서 잃어버린 20년 터널에 진입했다. 이건 그 당시의 기록이다.
책이 나올 때쯤 ‘저팬 배싱(일본 때리기)’은 글로벌 유행이다시피 했다. 한국 언론도 ‘일본 실패학’을 보도하곤 했다. 일본 경제가 가라앉은 게 어디 관료들만의 책임이겠는가. 그럼에도 당시 자료를 들여다보면 플라자협정에 따른 엔화 가치 급등,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다른 요인보다 ‘규제 지옥’을 만든 일본 관료사회를 꼬집는 글들이 많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 경제 위기 보고서’에서 일본이 실패한 첫째 이유로 광범위한 규제 등 일본식 정부 모델의 한계를 지목했다. 오죽하면 일본 후생성 소속의 한 의사는 미국에 건너가 “미국이 압력을 넣어 일본의 관료제도를 바꿔 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동아일보 1995년 2월 12일자)
관료와 규제는 한 묶음이다. 공무원이 바뀌지 않고는 규제가 바뀌지 않는다. 한국도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 혁파를 주장했지만 규제가 개선되지 않는 건 그것을 쥐고 있는 공무원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규제망국론’이 아닌 ‘관료망국론’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게다. 현 정부가 최근 들어서야 규제 샌드박스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은 규제 해소가 요원하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어느 시대의 (경제)부총리인지 모르겠다”고 한 건 현장의 체감규제가 어떤 수준인지 말해준다.
“모든 산업은 어떤 부처의 과(課)에 등록돼 보호 육성 규제를 받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청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면 이 산업을 어느 부처가 가져가서 지배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부처 간에 사투가 벌어진다. 주무 과가 돼 인허가권을 손에 넣으면 반드시 하나 둘 관련 단체가 만들어지고, 그 단체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낼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한 당시 일본의 먹이사슬 구조다. 한국 공무원사회가 이런 정도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었으면 싶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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