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의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아더 휴즈 [퇴근길 칼럼]

동아일보

입력 2019-04-10 15:15 수정 2019-04-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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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의 사랑은 통속적이지만 공감을 이끌어내기 쉬운 주제다. 19세기 영국 화가 아서 휴즈는 통속적인 사랑의 한 장면조차도 낭만적인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술가였다. 16세 때 왕립미술원에 작품이 전시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섬세한 자연 묘사와 인물의 감정 표현에 탁월했다.

그의 대표작 ‘4월의 사랑’은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방앗간집 딸’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 그림은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여름 별장 같은 곳에서 젊은 남녀가 사랑의 위기를 맞은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푸른 드레스에 긴 스카프를 걸친 여성은 가슴이 아픈 듯 오른손을 가슴에 얹은 채 고개를 돌리고 있다. 입술은 파르르 떨리는 듯하고, 눈에선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직전이다. 잘 보이진 않지만 그녀의 왼손 쪽엔 고개를 숙인 채 괴로워하는 남자의 머리가 숨겨져 있다. 창밖에는 라일락이 피어 있고, 여자의 시선이 머문 바닥 위엔 연보라색 장미 꽃잎이 떨어져 있다. 여기서 담쟁이덩굴은 영원한 삶을, 장미는 사랑을 상징한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은 사랑의 종말을, 라일락은 첫사랑과 젊은 날의 추억을 의미한다. 이렇게 휴즈는 여러 상징적인 요소를 통해 젊은 시절 풋사랑의 덧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의 아내다.

이 그림이 1856년 왕립미술원에 처음 전시되었을 때 가장 열광하며 찬사를 보냈던 건 영국의 저명한 비평가 존 러스킨이었다. 그림을 손에 넣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부유한 아버지를 불러 구입을 권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그림을 사간 건 놀랍게도 당시 22세의 옥스퍼드 대학생 번 존스였다.

사실 존스는 같은 대학 친구의 부탁을 받고 대신 그림을 사간 것이었다. 그가 지불한 수표에는 윌리엄 모리스의 서명이 적혀있었다.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모리스가 23세 청춘 시절 매료된 작품이 바로 또래 화가 휴즈가 그린 사랑 주제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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