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다치면 퍼트연습… 복서 아버지는 체력 담금질

김종석 기자

입력 2019-04-09 03:00 수정 2019-04-0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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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당당한 ‘여제’ 고진영
조부 별세땐 대회 포기하고 귀국… 1주기 이틀 앞두고 뜻깊은 트로피


지난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패밀리 골프대항전에 아버지 고성태 씨와 함께 출전한 고진영. 박준석 작가 제공
고진영(24·하이트)의 중고교 시절 별명은 ‘고 선배’였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선배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었다.

중학생 고진영이 고덕호 프로의 골프 아카데미 선수들과 함께 단체로 하와이 전지훈련을 갔을 때 일이다. 선배들이 주말을 맞아 해변에 놀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고진영은 “언니들 이러면 안 된다. 우리가 놀러온 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훈련할 때 그는 넘어지면서 손목을 심하게 다쳐 공을 칠 수 없었다. 고덕호 프로는 “당장 귀국해야 할 상태였는데 진영이는 달랐다. 퍼팅은 할 수 있다며 눈물을 쏟으며 훈련 기간 내내 하루 종일 그린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고진영은 강한 정신력과 성실한 태도로 유명했다. 고진영의 아버지 고성태 씨는 복싱 선수 출신이다. 자신을 닮아 운동선수로는 작고 삐쩍 마른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하자 아버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줄넘기와 헬스 운동을 시켜 단단한 근력을 갖추게 했다, 은광여고 시절 국내 최고 권위의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 정상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2009년 제주도지사배 전국주니어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고진영. 김효주와 장수연의 모습도 보인다. 대한골프협회 제공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뛰던 2015년 그는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다 해 먹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가 악플에 시달렸다. 솔직한 성격에 원대한 목표를 드러낸 것이었는데 건방지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한동안 마음고생에 시달리다가 이미지 변신에 노력을 기울인 그는 사람을 대할 때 호불호가 뚜렷했던 데에서 벗어나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으려 애쓰며 늘 자신을 낮추려 했다. 후배 이정은이 “진영 언니의 조언으로 미국 진출 결심을 했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고진영은 “뛰어난 선배들이 많다.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주위에선 고진영이 한결 성숙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고진영은 딱딱한 미국 그린에 적응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미국 선수는 러프에서 쳐도 공을 세우는데 난 그렇지 못했다”며 실망했다. 단단한 그린에서도 백스핀을 걸어 공을 세우기 위해 그는 강한 임팩트와 함께 클럽 페이스가 공을 일직선으로 정확하게 맞히는 데 집중했다.

은광여고 시절인 2013년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한 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부회장과 포즈를 취한 고진영. 대한골프협회 제공
고진영은 ANA 인스피레이션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버디 퍼트를 넣은 뒤 “부모님과 할아버지에게 우승을 바치겠다”며 울먹였다.

고진영의 할아버지는 진영이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온 가족이 함께 살며 외동딸 손녀를 끔찍이 아꼈다. 할아버지는 지난해 4월 10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하와이에서 롯데챔피언십 출전을 준비하던 고진영은 대회를 포기하고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조부 1주기를 이틀 앞두고 고진영은 어딘가에서 응원을 보냈을 할아버지를 향해 메이저 타이틀을 안겼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 1년 만에 첫 메이저 타이틀과 함께 새로운 골프 여제로 떠오른 고진영. 그의 거침없는 진격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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