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자 다시 콜록콜록… 봄 독감 기승

조건희 기자

입력 2019-04-09 03:00 수정 2019-04-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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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의심환자 3배 넘게 늘어… ‘쌍봉낙타형’ 유행 9년만에 처음
“최악 미세먼지에 환기 안해 교실내 바이러스 못빠져나가”


어린이 환자 북적이는 의원 독감유행주의보가 발령된 광주 남구의 한 의원에서 어린이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는 27.2명으로, 지난달 첫째 주(8.3명)의 3.3배 수준으로 늘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8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G소아청소년과의원 진료 대기실은 마스크를 쓴 초등학생 환자들로 붐볐다. 20여 명의 학생이 여기저기서 연신 콜록대는 소리와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 임고운 씨(40·여)는 “새 학기가 시작된 후로 방학 기간의 2배가 넘는 인플루엔자(독감) 의심환자가 몰려 점심 먹을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새 학기 독감이 거친 기세로 몰려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24∼30일에 전국 표본감시 의원 200곳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가 27.2명으로 집계됐다고 8일 밝혔다. 지난달 첫째 주의 8.3명 이후 꾸준히 늘어 3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현재 유행 규모는 지난해 12월 첫째 주(19.2명)보다도 크다. 특히 같은 기간 초등학생(7∼12세) 독감 의심환자가 13.3명에서 67.1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번 겨울 독감 유행은 초중고교 방학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에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 73.3명으로 한 차례 절정기를 맞은 바 있다. 이후 환자가 급감해 올해 2월 셋째 주엔 8명으로 유행주의보 해제 기준(6.3명) 근처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다시 한번 환자가 크게 늘면서 독감 유행이 초중고교 방학 전후 두 차례 피크를 찍는 ‘쌍봉낙타’형 유행곡선이 나타난 것이다.


봄철 독감 의심환자 수가 초중고교 방학 중 저점(低點)의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2010년 봄 이후 처음이다. 2010년엔 독감 의심환자가 3월 첫째 주 2.8명까지 줄었다가 4월 둘째 주 20.5명으로 증가했다. 이후엔 피크가 한 차례인 ‘단봉낙타’형으로 바뀌었다. 개학 후 환자가 늘어도 소폭에 그쳤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쌍봉낙타형 유행곡선이 다시 나타난 원인으로 지난달 초 한반도를 덮친 고농도 미세먼지를 지목했다. 독감 바이러스는 환자의 침방울로 전파된다.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창문을 꼭 닫고 있으면 환자가 내뿜은 바이러스가 빠져나가지 않고 교실이나 방 안에 머무른다. 공기청정기로는 독감 바이러스를 정화할 수 없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독감 환자와 함께 있으면 고농도 바이러스에 옮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평년보다 낮은 기온과 습도가 이어진 것도 독감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하순 서울의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0.5도, 상대습도는 3.5%포인트 낮았다.

정부가 예방접종 비용을 지원하는 독감 백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독감 환자들로부터 검출되는 바이러스의 10% 정도는 B형 ‘야마가타’다. 무료 접종 백신인 ‘3가’ 백신으로는 막을 수 없는 종류다. A형 바이러스 2종(H1N1, H3N2)과 B형 2종(빅토리아, 야마가타)을 모두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을 맞으려면 환자가 별도로 3만∼4만 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무료 접종 백신을 4가로 바꾸려면 현재 연간 1041억 원인 독감 예방접종 예산을 1.5배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평소 건강관리에 취약한 저소득층일수록 독감에 걸리면 심한 합병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을 맞히는 상황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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