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김 “에이즈 완치 낙관 일러… 백신개발 통한 예방이 우선돼야”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9-04-05 03:00 수정 2019-04-05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에이즈 유발 바이러스 ‘HIV’… 골수이식 통해 두번째 완치
과학-의학계 “극히 이례적 사례” 50% 예방 목표 백신 임상시험 중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은 1980년대부터 HIV를 연구한 세계적 전문가다. 그는 “최근 HIV 감염자를 위한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라고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지난달 5일 영국 런던에서 골수 이식을 통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치료한 사례가 사상 두 번째로 나왔다. 2007년 독일 베를린에서 첫 치료 사례가 나온 뒤 12년 만이다. HIV 감염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까지 치료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완치를 기대하기보다 백신 개발을 통한 감염 예방책을 마련하는 게 먼저라고 보고 있다.

HIV는 ‘레트로바이러스’과에 해당하는 독특한 바이러스다. 인간의 면역세포에 침투해 면역계를 망가뜨린 뒤 10여 년의 잠복기를 거쳐 감염자가 폐렴 등 다른 병에 걸렸을 때 에이즈를 일으킨다. 평소라면 면역력을 통해 거뜬히 이겨냈을 병도 면역력이 사라져 이겨내지 못한다. 치사율이 높아 일단 걸리면 반드시 죽는 ‘20세기 흑사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HIV 진단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인간 면역세포인 백혈구에 침투한 HIV(녹색)의 모습이다. ·WHO·NIH 제공
하지만 의학이 발전하면서 HIV 자체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에이즈가 발병한 뒤에도 만성질병처럼 관리만 잘하면 3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게 학자들의 평가다. 물론 HIV에 감염된 사람은 체액을 통해 바이러스를 전파할 위험이 있고, 자손에게도 물려주게 돼 치료제와 예방 백신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HIV 감염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3700만 명에 이른다. 백신 개발에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는 결핵, 말라리아와 함께 세계 3위권이다.

아직은 HIV에 감염된 환자를 위한 치료제와 백신 모두 완벽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변이가 심하고 갑옷 같은 껍질과 가면으로 덮여 면역체계가 발견하기도, 파괴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나온 사상 두 번째 치료 사례는 골수 이식을 통해 HIV가 체내 면역세포에 감염되는 과정을 막아 확산을 막았다. 앞서 2007년 공개된 첫 HIV 환자 치료에 사용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당시 HIV에 감염된 미국인 티머시 브라운 씨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골수 이식을 받았다. 그런데 이식받은 골수 속에서 혈액세포와 면역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인 조혈모세포에 유전자 변이가 있었다. HIV가 면역세포에 침투할 때는 세포 표면에 마치 안테나처럼 튀어나와 있는 신호 감지 단백질을 표적으로 이용한다. 그런데 브라운 씨가 이식받은 골수 속 조혈모세포는 이 표적 안테나 단백질이 없었다. HIV가 면역세포에 침투할 수 없었고 결국 3개월 뒤부터 HIV 수치가 떨어져 지금까지 별도의 항바이러스 치료 없이도 HIV가 검출되지 않았다.

지난달 발표된 사례도 비슷하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런던 거주 남성은 호지킨 림프종을 2012년부터 앓아왔는데, 골수 이식을 통해 면역세포 안테나 단백질이 없는 조혈모세포를 공급받았다. 그는 이식 16개월 뒤 검사에서 HIV가 검출되지 않았고, 효과는 항바이러스 치료를 중단한 뒤에도 지속되고 있다.

과학계와 의학계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HIV 전문가인 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은 “전 세계 감염 환자 3700만 명 가운데 두 명이 성공한 상황에서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라며 “골수 이식이라는 위험성이 큰 방법 말고 덜 위험하고 싸며 보다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대안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런던 환자 치료를 맡은 라빈드라 굽타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의대 교수도 “HIV 감염은 잠복기가 길어 더 긴 추적 조사가 필요하다”며 “아직은 완전한 치료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두 건의 사례는 모두 ‘CCR5’라는 특정 안테나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다. 하지만 HIV에는 이와 다른 안테나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는 아직 성공한 적이 없다.

학계에서는 다른 방식의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김 사무총장은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에 결합해 마치 바이러스에 수갑을 채우듯 생물학적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광역중화항체(bNAbs)를 이용하는 치료법과 백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신의 경우 혈액에서 바이러스를 거르거나 바이러스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방법, 바이러스 복제를 막는 방법 등이 고려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이 특히 유망하다”며 “2, 3년 안에 두 가지 종류의 백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국에서 임상시험 중인 백신은 첫해에 최대 60%까지 감염을 막을 수 있지만 3년 반 뒤에는 35%로 효율이 떨어진다”며 “추가 접종을 통해 효과를 50% 이상까지 개선해 젊은 HIV 감염자가 많은 남아프리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2022년을 목표로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북미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모든 지역의 HIV에 작용하는 또 다른 백신 역시 올해 아프리카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