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수]산업계 씁쓸한 뉴스 풍년 이제 희망찬 기사 쓰고 싶어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입력 2019-04-05 03:00 수정 2019-04-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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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요즘 산업계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현장에서 이런 얘기를 나눈다. “지금까지 이런 뉴스 ‘풍년’은 없었다.”

지난주 국내 1, 2위 항공사 총수가 연달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걸 목격하니 이 말이 더 실감났다. 이례적으로 현안이 한번에 쏟아져 담당 기자들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라며 어리둥절할 정도다.

따져보면 뉴스 풍년의 포문은 한국GM이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면서 열었다.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나타나 현대자동차에 공세를 시작했고,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결국 철회했다. 대한항공 ‘물컵’ 사건,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 둔화, 주요 기업 실적 쇼크, 글로벌 기업 구조조정 등 뉴스가 이어졌다.

올해도 만만치 않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르노삼성차 노조의 이례적인 장기파업, 엘리엇의 재공세, 카드사와 기업 간 수수료 갈등, 아시아나항공 비적정 감사의견 사태, 국민연금 주도의 주주 행동주의 강화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정부·지방자치단체가 관련된 뉴스는 날이 갈수록 더 확대되고 있다. 광주·전북형 일자리,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의 기업 압수수색은 흔해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해외뉴스까지 더하자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 예고, 미중 무역갈등까지 끝도 없다.

과거엔 사회·정치 분야와는 달리 기업 이슈는 돌발성이 적은 편이었다. 한두 건 돌발적으로 이슈가 생겨도 이렇게 동시다발적이진 않았다. 그러니 기업들이 아우성이다.

나쁜 뉴스 풍년은 개별 기업과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이유에서 나온 것도 있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모르고 쏟아진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고질적 문제,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라는 새로운 문제, 여기에 정부 정책 리스크까지 얹혀지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상당수 대기업은 3, 4세로 승계할 시점을 맞아 내부 진통과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시기가 행동주의 펀드에는 좋은 공격 타이밍이다. 하필 이때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재벌개혁을 해보자는 정부의 요구도 겹쳤다. 또 반기업 정서와 주주 행동주의의 만남도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노사 갈등과 고비용·저생산성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산업 패러다임은 너무 빨리 변해 재계는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필 이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시작됐고, 중국은 싼 가격만 아니라 기술로도 한국 기업을 턱밑까지 쫓고, 미중 갈등에 따른 무역장벽마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기업들의 나쁜 뉴스 풍년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당장 오늘(5일) 삼성전자가 잠정실적을 공개한다. 이례적으로 실적 악화를 예고한 터라 시장은 숨죽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에서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이 곧 시작되면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한국GM이 떠난 전북 군산시, 르노삼성 생산물량 감소로 아우성인 부산에 이어 기자들이 몰리는 슬픈 도시가 또 생길까 두렵다. 이제 희망 찬 기사 좀 쓰고 싶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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