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한 숟가락 두 숟가락… 뽀얀 건우럭탕과 사랑에 빠졌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입력 2019-04-04 03:00 수정 2019-04-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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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바스크 음식을 주제로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피레네산맥 서부 바스크 지역의 북쪽은 프랑스, 남쪽은 스페인에 걸쳐 있다. 진정한 바스크인들에게는 행정국가가 프랑스든 스페인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단지 바스크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는 바스크의 후손일 뿐이었다. 그때 맛본 바스크 음식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마치 서울에서만 살아왔던 사람이 생전 처음 전라도 시골 밥상을 받은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스페인 알라바(ALAVA)주의 일부러 찾아가기도 어려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바스크식 생선요리였다. 주 재료인 커다란 대구 뽈살은 염장해서 말린 후 짠 기를 잘 빼서 요리를 시작한다. 이 요리의 특별한 소스는 올리브오일과 마늘 같은 심플한 재료로 만든 노르스름한 빛깔의 걸쭉한 형태였는데,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대구의 콜라겐을 모아 만든 필필(pil-pil)이라는 전형적인 바스크 향토음식이었다. 소금 뿌려 말린 생선을 재탄생시킨 그 토착 요리는 바스크의 맛 그 자체였다.

얼마 전 서해안고속도로 끝자락 목포의 봄 여행 중, 바스크의 생선 필필에서 느낀 향토 감성이 다시 솟구쳤다. 항구도시에 가면 모든 음식이 싱싱한 횟감으로 펄펄 뛸 줄 알았다. 물론 제철의 신선한 회를 취급하는 식당도 많고 한정식을 차려주는 곳에서는 전식으로 서울에서 보기 귀한 회가 밑반찬으로 줄줄이 나왔다. 그중 예상치 못한 가장 큰 감동으로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실한 회 한 점보다 말린 우럭포탕 한 숟가락이었다. 소금 간해서 말린 우럭을 뚝뚝 잘라 무와 버섯, 파를 넣은 국물은 단순하다는 단어를 넘어서 어찌 보면 성의 없이 만든 전골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 심플한 탕 요리가 버너 위에서 끓으니 진면목을 드러낸다. 보글보글 끓을수록 국물 색은 점점 뿌옇게 되면서 탁해져 갔다.

건우럭탕을 처음 접한다면 익기 전에 국물을 맛보지 말라고 꼭 말하고 싶다. 생선이 건조되면서 생기는 특유의 비린 맛을 조금이라도 감지한다면, 연인으로 가까워지기 전 밀당(밀고 당김)하다 헤어지는 꼴이 되고 만다. 꾹 참고 뽀얀 국물이 되었을 때 숟가락을 담길 바란다. 한두 숟가락 먹다 보면 한 그릇이 끝나기 전에 중독이 되고 만다. 바스크의 대구필필이나 목포의 우럭간국이 주는 소박함이 통하는 순간이다.

‘만선식당’은 옛 필름을 돌려보는 듯한 모습 그대로 목포 구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우럭간국을 끓이는 오너의 비밀까지도 기꺼이 노출되는 오픈 주방은 진정 참국물 명소이다. ‘옥경이네건생선’은 마른생선을 주력 술안주로 내놓는 시장통 강호이다. 우럭젓국으로 술국을 대신할 수 있다. ‘화해당’은 간장게장전문점이지만 우럭포찜을 주문하면 양질의 큰 우럭포가 제대로 쪄서 나온다. 우럭 자체에서 나온 우럭기름으로 윤기가 흐른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 만선식당 전남 목포시 서산로 2, 우럭탕(우럭간국) 小 3만5000원

○ 옥경이네건생선 서울 중구 퇴계로 85길 11, 건우럭찜(구이) 1만5000원, 우럭젓국 2만7000원

○ 화해당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74길 20, 우럭포찜 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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