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73〉‘쑥 복대’를 찬 영조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19-04-01 03:00 수정 2019-04-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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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계절음식을 찾아 먹는 우리네 풍습에는 인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성분을 때맞춰 공급하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겼다. 음력 2월이면 고향의 어머니는 지난해 봄에 따서 말린 쑥을 가루로 만들어 쑥떡을 준비했다. 겨울철 부족해진 영양소를 우리 몸에 듬뿍 공급하기 위한 약식이었다. 쑥에는 비타민A가 특히 많이 들었다. 비타민A는 눈을 밝게 하고 피부를 튼튼하게 하며 병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해주는 효과(면역)가 있다. 비타민C도 풍부해 봄철 환절기 감기 예방과 치료에도 좋다.

봄철의 쑥은 예부터 건강에 좋은 자연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쑥떡, 쑥밥, 쑥범벅, 된장국…, 밥상에 쑥 향이 퍼지면 그때가 곧 봄이었다. 봄의 귀한 전령사였던 셈이다. 쑥을 먹고서야 겨우내 움츠렸던 인체는 활기를 찾았다.

쑥에는 양적(陽的)인 기운이 넘쳐흐른다. 조상들이 삼월삼짇날이나 단오 등 양기가 가장 성한 날을 골라 쑥을 뜯어 말린 것도 그 양적 본성을 더욱 북돋우기 위해서다. 양기가 성한 만큼 쑥은 인체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래서 양기가 부족한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 불임, 임신 중 하혈, 냉대하 등에 쑥을 오랫동안 고아 엿처럼 달인 고(膏)를 복용하거나 탕으로 달여 먹어도 효과가 크다. 쑥뜸의 한자는 구(灸)로 차게 식은 몸을 불로 달군다는 의미다. 쑥은 오랜 병으로 지친 인체를 따뜻한 양기로 북돋우는 보일러 같은 존재다. 그만큼 양적인 기운이 강하다. 뜸을 뜨는 재료로 쑥이 쓰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쑥은 속을 따뜻하게 하고 냉기를 없애며 습기를 말려준다. 기혈을 다스리고 자궁을 따뜻하게 하며 모든 출혈을 멎게 한다. 배를 따뜻하게 하고 경락을 고르게 하며 태아를 편하게 한다.”

요즘 말로 하면 ‘건강염려증’이 있었던 영조는 쑥으로 복대를 만들어 배를 감싸고 다니기도 했다. 영조 37년 승정원일기를 보면 소화불량과 어지럼증에 자주 시달리던 영조에게 의관들은 쑥 복대를 권한다. 의관들은 영조의 이런 증상들이 몸이 차가워져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쑥 복대를 착안했다. 쑥의 뜨거운 기운으로 배를 따뜻하게 데울 심산이었다. 쑥 복대를 찬 후 영조는 “음식 맛도 좋아지고 어지럼증도 회복되었다”며 좋아한다. 왕실에서는 쑥떡의 일종인 ‘청애단자’를 만들어 약식으로 먹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쑥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근래에 이르기까지 산촌에선 배앓이와 설사를 치료하는 가정상비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쑥은 봄철 찾아오는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에도 유용하다. 미세먼지, 찬바람, 꽃가루 등에 노출돼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콧물, 재채기 등 알레르기 증상을 치료하는 데 특효다. 쑥을 주전자에 넣고 증기를 마시면 점막이 튼튼해지면서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 온다.

사실 쑥은 한민족의 생존에 도움을 준 대표적 구황음식이기도 하다. 세종 29년 평안도 상원군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17명에 이르자 의관들은 “쑥 잎과 그 열매를 따 쌀과 소금을 물에 끓여 죽을 쒀 먹이면 흉년을 구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언한다. 영조 때 재야 지식인이었던 성호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쑥은 향긋한 별미의 음식이고 많은 병을 낫게 하는 풀”이라고 소개하면서 “조선사의 명맥을 잇게 하는 일등공신”이라고까지 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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