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들 탈세하려 ‘음식점’ 등록… “적발 어렵다” 손놓은 구청

고도예 기자 , 남건우 기자

입력 2019-03-26 03:00 수정 2019-03-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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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일대 불법영업 업소 수두룩… 춤추는 주점 27곳중 18곳 일반음식점

일반음식점 으로 허위신고한 강남의 라운지바!
23일 밤 12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주점. 주점 안에 설치된 간이 무대에 여성 가수가 등장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은 무대 앞 10평 남짓한 공간에 몰려들었다. 기타 소리가 울렸고 손님들은 춤을 췄다. 색색의 조명이 무대를 비췄다. 직원은 주점 안의 젊은 남녀를 합석시키느라 바빴다.

이 주점처럼 술을 팔면서 손님들이 춤을 추는 공간까지 갖춘 곳은 현행법상 유흥주점으로 분류된다. 유흥주점은 신고만 하면 되는 일반음식점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영업할 수 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세금도 더 내야 한다. 그런데 이 업소는 관할 구에 일반음식점으로 신고돼 있다.

23일 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주점에서 손님들이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주점에서 손님들이 춤을 추려면 관할 구청에 유흥주점으로 등록돼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영업 형태는 유흥주점인데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는 ‘꼼수 영업’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본보가 서울 강남구 일대 클럽 13곳과 라운지바 14곳 등 술도 마시고 춤도 출 수 있는 업소 27곳을 추려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유흥주점으로 등록된 곳은 9곳뿐이었다. 라운지바는 단 한 곳도 유흥주점 허가를 받지 않았다.


○ 사무실로 신고하고 룸살롱 영업

업주들이 유흥주점을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는 이유는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음식점은 매출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낸다. 이에 비해 유흥주점은 부가가치세에 더해 사치성 업종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매출 10%)와 교육세(개별소비세의 3%)까지 내야 한다. 1년에 10억 원을 버는 클럽이 유흥주점으로 신고하면 최소 1억9000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면 9000만 원 정도만 내면 된다.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면 문을 열 수 있는 지역도 넓어진다. 유흥주점은 유동인구가 많은 일반상업지역에서만 영업할 수 있지만 일반음식점은 주택이나 학교가 있는 주거지역에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클럽은 유흥주점이 들어설 수 없는 아파트단지 인근에서 2017년 5월부터 1년 9개월간 불법 영업을 했다. 하지만 이 클럽은 일반음식점과 같은 2종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돼 있어 단 한 번의 행정처분도 받지 않았다. 본보 기자가 23일 찾은 청담동의 한 라운지바는 접대부를 고용해 룸살롱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업소는 관할 구에 사무실로 등록돼 있다.


○ 지난해 행정처분은 18건에 불과

이런 ‘꼼수 영업’에 대한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단속 공무원이 업장을 방문해 위법 행위가 이뤄지는 현장을 적발해야만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는데 현장을 적발하기가 어렵다는 게 관할 구의 설명이다. 강남구 위생과에 따르면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뒤 유흥 접객원을 고용하거나 손님들이 춤을 췄다는 등의 이유로 행정처분을 한 경우는 2016년 49건에서 2017년 36건, 지난해 18건으로 매년 줄었다. 강남구 위생과 관계자는 “최근엔 단속을 나가 업장 입구에서 공무원증을 보여주면 가드들이 ‘멤버십으로 운영된다’며 시간을 끌곤 한다”며 “그러다 주점에 들어가 보면 손님들은 모두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어 춤추는 현장을 적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구에서는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해 놓고 유흥주점 영업을 하다 처음 단속되면 1개월, 두 번째는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세 번째 단속되면 업소 문을 닫아야 한다. 하지만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상 1년이 지나면 처분 기록이 남지 않는다. 결국 1년에 세 번 단속되지 않는 이상 문을 닫아야 하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구 위생과 관계자는 “단속에 걸려도 업주가 보는 불이익은 적은 반면 유흥주점을 일반음식점으로 허위 신고해 누릴 수 있는 이득은 많은 상황”이라며 “단속을 엄격히 하고 적발 시 행정 처분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도예 yea@donga.com·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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