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55〉긴자에서 줄 서서 맛보는 고로케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입력 2019-03-25 03:00 수정 2019-03-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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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얼마 전 시장에 다녀온 아내가 선물이라고 봉투를 내어줬다. 봉투 안에는 온기가 가시지 않은 ‘고로케’(크로켓)가 들어 있었다. 고로케를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국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엄마는 월급날이면 나를 시장 근처 고로케 가게로 데려갔다. 기름에서 막 건진 고로케를 신문지 조각에 싸서 건네주었다. 돈가스 소스를 듬뿍 찍어 먹으려 할 때마다 엄마는 “조심해라, 입 덴다”고 항상 같은 말을 했다. 간 고기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로케였지만 빵가루의 바삭함과 고소함이 가득했다.

프랑스의 크로케트(croquette) 또는 네덜란드의 크로커트(kroket)로부터 시작돼 고로케가 일본식 서양요리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는 100년이 채 안 된다.

1898년 요리의 황제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는 프랑스 요리를 집대성한 요리책을 통해 크로케트를 전 세계에 알린다. 이 요리책은 요즘도 번역본이 나올 정도니 ‘요리사들의 교과서’라고 부를 만하다. 나 역시도 이 책을 보고 공부했다.

메이지 시대(1868∼1912년)부터 일본은 도시를 중심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하게 된다. 고로케와 돈가스, 카레라이스 등이 고급 음식으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베샤멜소스를 곁들인 고로케는 평민들은 먹어 볼 수 없는 고가로, 돈가스나 스테이크보다 더 비싼 가격이었다.

미국의 경제공항과 간토(關東)대지진 등으로 일본도 다른 국가들처럼 최대의 공황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런 가운데 1927년 도쿄 긴자에 ‘조시야(Choushiya)’라는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베 세이로쿠는 팔고 남은 고기나 변색된 자투리 고기들을 다져 감자와 섞고 정육점에 흔히 굴러다니던 기름덩이를 끓여 기름 대신 사용해 오늘날의 고로케를 만들었다. 고기, 감자, 기름의 환상 조합이지만 가격은 프랑스 스타일 크로케트 대비 10분의 1 정도였다.

일본식과 서양식 크로켓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빵가루다. 서양식 빵가루는 먹다 남은 빵이나 딱딱한 겉 부분을 잘게 간 것으로 입자가 일정하다. 일본식 빵가루는 공기층이 보이듯 찢어져 있고 형태나 입자가 고르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특히 러일전쟁) 당시 탱크의 배터리를 연결하던 전선을 반죽에 끼워 넣고 구워 빵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오늘날 고로케는 슈퍼마켓과 정육점, 편의점, 고로케 전문점 등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한 슈퍼마켓에서는 냉동 고로케가 매출 1위 아이템이라고 한다. 고베비프(일본 고베에서 자란 소)를 넣어 만든 한 회사의 고로케는 한 팩에 10개가 냉동 포장돼 3만20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데, 13년 동안 예약돼 있어 판매 중단 상태이고, 이후 다시 판매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힐 정도다.

긴자에 갈 일이 있다면 처음 만든 그대로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조시야 고로케를 140엔, 샌드위치를 250엔에 판매하고 있으니 한 번쯤 줄 서 먹어볼 것을 권한다. 긴자의 골목에서 포장 상태로만 운영되고 있으나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고 당일 준비량이 떨어지면 끝난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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