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벤처붐’ 꿈꿨던 홍종학, 미완의 꿈 남긴 채 아쉬운 퇴장

뉴스1

입력 2019-03-11 09:50 수정 2019-03-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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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저격수’ 이미지 벗고 대기업 옥죄기보다 자율적 상생 추구
조직 문화 혁신 등도 긍정평가…‘소통’ 아쉬웠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 News1
홍종학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실험’이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지난 8일 청와대의 개각 발표로 홍 장관은 만 1년3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에 대해서는 2017년 7월 청에서 부로 승격된 이후 118일만(11월21일)에 부임한 초대 장관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현안에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입장이 정책에 더 많이 반영되도록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재벌 저격수’ 이미지 불구…大-中企간 자율 상생 무게

홍 장관은 19대 국회의원과 대학교수를 거치면서 ‘재벌 저격수’라는 별칭이 따라 다녔다. 실제로 임기 내내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가 내놓은 ‘1호 대책’도 ‘기술 탈취 근절’이었다. 취임 반년만인 2018년 6월 ‘기술 탈취 행정조사 신설’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될성부른’ 중기가 대기업의 기술탈취로 망가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난달 1일 경북 구미시를 방문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중소벤처기업 현장 간담회가 열린 케이알이엠에스 3공장에서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홍 장관은 수도권과 지역을 같은 잣대로 봐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정부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News1
민간 출신 홍 장관은 정책 집행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일방통행·하향식 정책 집행보다는 민간 자율로 시장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소신을 실천했다. 시장 지배자인 대기업을 옥죄기 보다는 스스로 변화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경제 전반의 낙수효과가 발생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업계의 중장기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넛지(nudge,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방식의 상생 협력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유통업계 ‘빅3’(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업체들에 대한 불공정 행위 직권조사(2016~2017년)다. PB(자체 브랜드)상품 납품업체에게 지급할 납품대금을 부당하게 깎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직권조사를 실시했지만 ‘철퇴’를 가하는 대신 재발 방지를 위한 협약 체결로 자율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규제 일변도인 관료 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관(官)에서 민(民)으로 이어진 ‘상생 다리’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공장 지원 정책에도 이 기조가 유지됐다.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2만개를 구축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은 중소벤처기업부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목표였다. 하지만 삼성과 LG 등 기존 대기업들이 이미 실시하고 있는 민간 지원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대기업과 매칭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홍 장관은 지난 7일 ‘2019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규제로 풀기보다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대기업이 해온 좋은 정책은 활성화해서 새로운 협업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정부는 한걸음 물러나 시장이 잘돌아가게 하는 것, 시장이 요구하는 정책을 펼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넛지 효과는 최근 들어 수치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의 상생 결제는 지난해 최초로 연 100조원을 돌파했고 상생기금 출연도 연간 최대인 2013억원을 달성했다.

그간 중소기업 중심 정책에 머물러 있던 중기부가 유니콘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창업·벤처기업 생태계 조성에 앞장 선 것도 눈에 띈다. 창업의 걸림돌이 됐던 연대 보증 폐지(2017년 2조9000억→2018년 12조원)와 신기술 뒷받침을 위한 기술 개발 제품 시범 구매(적극적 행정으로 해석), 상생 일환에서 나온 민간제안 펀드 신설(3153억원) 등은 홍 장관이 온 뒤 새롭게 시도된 정책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R&D(연구·개발) 지원 대상 선정 권한을 민간에 대폭 이양한 게 기억에 남는다”며 “여성 인력을 확충해 여성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시키면 한다, 보고를 위한 보고’ 없앴다… 조직 문화 업그레이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월 22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중소기업 상생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News1
홍 장관은 중기부 내부 개혁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경직된 조직 문화 개선에도 홍 장관은 두 팔을 걷었다. 중기부가 벤처와 창업을 이끄는 주무부처답게 조직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과거 중기청 시절 산업통상자원부 아래에 있으면서 수동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조직이 스스로 깨어 움직일 수 있도록 일종의 ‘충격파’를 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온 게 ‘아무 말 대잔치’ 익명 게시판이다. 홍 장관이 부임하고 새로 만들어진 이 게시판은 직원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바뀌었으면 하는 조직 문화와 정책 제안을 과감하게 장관에게 ‘직보’할 수 있도록 만든 소통 창구였다. 일종의 ‘수평적 조직 문화’ 실험이었다. 홍 장관은 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거의 매일 보고 받았고 실제 정책 집행에 반영했다. 국·실장 60여명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수시로 의견을 조율하기도 했다.

또 그는 ‘보고를 위한 보고’ 문화도 과감히 청산했다. 이른바 ‘원클릭 보고서’다. 내용은 빈약하지만 다양한 도표와 그래프를 삽입하고 서체 스타일도 통일하는 등 수십·수백페이지의 화려한 보고서 대신 내실을 기하자는 차원에서 나왔다. 중기부 한 직원은 “장관이 온 후 요식주의를 벗어나자며 원클릭 보고서가 탄생했다. 이는 내부적으로도 정착했다”며 “직원들도 환영한 제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의전을 거부했던 홍 장관은 직원들로부터 ‘종이학’(종학이라는 이름과 비슷해 붙여진 별명)으로 불리길 원했다. 대외적으로 배포되는 중기부의 보도자료에도 그의 이름 대신 ‘종이학’이 적히곤 했다.

홍 장관은 지난해 말 직원들과의 ‘연찬회’에서 “장관 한 사람으로 중소기업 정책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관료인 여러분들이 바뀌어야 10년 후에 비로소 성공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조직문화의 변화가 성공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한 셈이다.

◇ 정책 ‘패러다임 시프트’… 오픈 이노베이션에 미래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을 발표전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News1
홍 장관은 임기 내내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강조하고 다녔다. 상생을 기반으로 한 공정 생태계 조성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툴 안에서 기술 경쟁을 펼치고, 우수 기술은 과감히 받아들여 시장 전반에 활력과 혁신을 불어넣는 구조다.

그는 지난 7일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술 탈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의 좋은 기술을 사거나 M&A(인수·합병)를 하는 예가 거의 없었다”며 “해외에서는 대기업들이 좋은 기술이라면 M&A를 해서라도 받아들이는데 이 같은 생태계 조성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작년부터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홍 장관은 기술 혁신과 교류, 협업, 금융 지원 등이 원스톱으로 일어나는 ‘스타트업 파크’ 혹은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년 천문학적 단위의 R&D 예산 집행이 이뤄지지만 경제 전반에 변화를 야기하는 낙수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반성 아래 이 같은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학계 등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창업공간인 스타트업 파크를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고 홍 장관은 힘줘 말했다.

그는 “이들이 활발히 교류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대부분 70년대식 개발(건설) 프레임으로 오인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그들 사이에 교류만 활발하다면 한국 경제가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홍 장관의 이 정책 아이디어는 업계 일부에서 과도한 장기 플랜, 이상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체질과 구조를 바꾸는 패러다임 대(大)전환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시각도 있다. 다만 오픈 이노베이션 ‘실험’은 그가 물러남으로써 미완의 꿈으로 남게 됐다. 그가 올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제2 벤처붐’도 마찬가지다.

◇ ‘현장형 리더’ 성과, 소통 측면에선 아쉬움 남아

홍 장관은 ‘현장형 리더’를 자임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벤처기업의 진정한 수호천사가 되겠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고용과 투자가 얼어 붙으면서 경기지표가 일제히 나빠졌다. 자연스럽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비판이 제기됐고 홍 장관 역시 자유롭기 어려웠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직격탄을 맞은 제조업과 소상공인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해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온누리상품권 등 전통시장 살리기 정책, 카드 수수료 부담 경감을 위해 도입한 제로페이(소상공인 간편결제 시스템) 등 보완대책을 내놨다. 특히 지난해 연말 나온 ‘자영업 대책’은 업계와 중기부가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내놓은 정책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부여됐다.

하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중기부 장관이 우리 업계의 대변자이자 청와대를 향해 할말을 하는 장관이길 원했다”며 “하지만 범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큰 그림에 우리가 따라가길 바라는 듯한 말을 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료 출신이 아니어서 새로운 실험이 많이 일어났지만 반대로 행정 경험 부족으로 아이디어는 좋은데 일처리가 더뎠던 것 같다”며 “충분한 스킨십과 소통을 보여주지 못해 소상공인 등과 거리를 좁히지 못한 거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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