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 농사 6년 차, 발효원액으로 사업성 높여”

정혜연 기자

입력 2019-03-09 14:58 수정 2019-03-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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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연천 청년창업농 정병구 ‘오고농원’ 대표

정병구 ‘오고농원’ 대표는 6년 전 아버지를 따라 귀농했다 본격적으로 오미자 농사에 뛰어들어 어엿한 ‘청년농부’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제공 · 정병구]
콩알만 한 빨간 열매에서 다섯 가지 맛이 난다. 달콤하면서도 씁쓰레하고, 새콤하면서도 짜고 매운맛까지 감돈다. 그중에 쓴맛과 신맛이 강해 청을 담갔다 여름철 얼음물에 타 마시면 갈증 해소에 그만이다. 오미자는 그 붉은 색깔만큼이나 강렬한 맛으로 각인돼 있다.

맛만 좋은 게 아니라 건강에 좋기로도 이름나 있다. 쉬잔드린, 고미신, 시트랄, 시트르산 같은 성분이 심장을 강하게 하고, 혈압을 낮추며, 면역력 증강에도 도움을 준다. 또 폐 기능을 강화하고 진해·거담 작용도 해 기침 완화나 갈증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오미자 생과와 설탕을 일대일 비율로 숙성, 발효시키면 우리 몸에 유익한 효소가 생성돼 소화를 돕고 생과 본연의 효능도 증강된다.


일교차 큰 산비탈서 재배

경기 연천군에 위치한 ‘오고농원’은 해발 800m의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약 1만9800㎡(약 6000평) 규모의 농장으로, 일교차가 커 오미자 당도가 높다. [사진 제공 · 정병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오미자 산지는 경북 문경이다. 20여 년 전 산에서 나는 오미자를 문경지역 농부들이 밭으로 옮겨 심었고, 문경 전체로 퍼져 대표적인 지역 소득 작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문경에서만 오미자가 나는 건 아니다. 경기 연천군에도 약 1만9800㎡(약 6000평) 규모의 오미자 농장이 있다. 6년 전 한 청년이 도시 일을 그만두고, 퇴직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던 이곳에 오미자 농장을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연천군에서 창농을 원하는 이들에게 지역 특산물로 권장하는 작물은 사과였다. 그러나 정병구(39) ‘오고농원’ 대표가 오미자를 선택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농장이 지리적으로 산비탈에 위치해 배수가 원활한 데다, 비교적 고지대라 일교차도 커 과육이 잘 여물 것이라 확신했다. 여러 작물을 심었는데 오미자를 키우는 게 가장 생산성이 높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창농을 결심하고 단기간 성장을 일궈낸 정 대표로부터 성공 비결을 들었다.


농사를 지을 때 3월은 어떤 시기인가.

“원래 12~2월은 농한기고 3월부터 바빠진다. 꽃이 피기 전 정지·전정 작업을 해야 한다. 정지는 나무 줄기와 가지의 생장을 조정하는 것이고, 전정은 정지를 하고자 나무의 가지, 줄기, 잎의 일부를 잘라내는 작업을 말한다. 쉽게 말해 가지치기인데, 이를 미리 해둬야 과육의 상품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후 어떤 농사 과정을 거치나.

“4~5월에는 꽃이 피고, 6월부터 열매가 잘 크도록 물을 대줘야 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보급하는 미생물을 받아와 물에 섞어 공급해주고 있다. 미생물 요법으로 나무를 키우면 병충해에 강해 잘 자란다. 7~8월은 오미자가 익는 때인데, 이 무렵 예약을 받아 생산량을 미리 맞춘다. 9월부터 10월까지 본격적으로 수확하고 11월부터는 퇴비작업을 한다. 12~2월에는 농사를 쉬지만, 항아리에 저장해둔 오미자로 청을 담가 원액을 판매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쉴 틈이 없다.”


연천에서 오미자 농사를 짓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오미자는 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곳에서 생산해야 한다. 일교차가 커야 과육의 당도가 높다. 연천은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해 천혜의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밭이 많다. 오고농원은 고도 800m 산비탈에 자리하고, 계곡을 끼고 있어 배수가 원활하다. 우리나라가 점차 열대성 기후로 변하고 있는데 남부 지방보다 중부 지방의 미래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농장 이름 ‘오고농원’은 무슨 뜻인가.

“연천군의 지역명 유래를 보면 태종 이방원이 친구 이양소를 조선왕조 건국에 참여케 하고자 5번이나 연천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다. 이양소는 끝내 응하지 않았는데, 이때 이방원이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고 해 연천(눈물 흘릴 漣, 내 川)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의 ‘오고초려’ 일화를 듣고 ‘오고’를 따 농장 이름을 지었다. 손님들이 한 번이 아니라 다섯 번 이상 찾는 농장이 되도록 하겠다는 각오가 담긴 이름이다.”


오고농원에서는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가.

“먼저 오미자 생과를 판매한다. 9~10월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따 전국으로 보낸다. 생과 1kg에 1만 원씩이다. 오미자는 수확 후 사흘 이내에 판매하지 못하면 바로 물러 상품성이 떨어진다. 주문량에 맞춰 팔고, 남으면 말려서 건오미자로 만든다. 일부는 당조림으로 청을 만들고, 100일간 숙성시켜 오미자원액만 담아 판매하기도 한다. 생과는 배송 과정에서 무르고 터질 수 있기 때문에 경기 북부, 서울 북부 지역은 직접 배송하고, 이외 지방은 최대한 꼼꼼하게 포장해 발송하는데 배송 과정에서 기사들이 막 다루는 건 어쩔 수 없어 양해를 구한다.”


생과만큼 발효를 거친 오미자청, 오미자원액이 좋은 이유가 있나.

“사실 오미자 생과는 그냥 먹기 힘들다. 다섯 가지 맛 가운데 쓴맛이 강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주로 청을 담가 먹었다. 청을 담그면 쓴맛과 매운맛, 짠맛은 줄고 신맛과 달콤한 맛이 강해져 희석해 먹기 좋다. 또 생과보다 숙성 기간을 거친 원액이 발효 후 유익한 효소가 더 살아 있어 소화를 돕고, 오장육부에 기운이 돋도록 돕는다. 청을 담근 지 100일에서 6개월 사이가 육안으로 봤을 때 빛깔이 가장 붉고 투명하다. 오고농원에서 판매하는 발효원액 제품은 모두 전통방식으로 항아리에 설탕과 생과를 일대일 비율로 넣어 100일간 숙성, 발효시킨 것이다. 100일이 됐을 때 병에 담아 살균 작업하고 배송한다.”


조선소 특수용접공에서 청년 농부로


정 대표는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막힘없이 답했다. 자식처럼 키운 오미자를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였다. 농사의 ‘농’ 자도 모르던 그가 6년 만에 어엿한 청년 농부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젊을 때 틀을 잡아놓겠다’는 의지 덕분이었다. 1만9800㎡에 이르는 농장을 매일 직접 가꾸는 그는 “이제야 농장이 궤도에 올랐다”고 말했다.


귀농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조선소에서 특수용접을 했다. 특수 기술직이라 일당이 높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일이 위험했다. 같은 일을 하다 다치는 사람을 숱하게 봤고, 죽는 사람도 1년에 두세 명 있었다. 30대에 들어설 즈음 ‘이 시기에 뭔가 준비해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아버지가 하던 일을 접고 귀농했고, 시간 날 때마다 돕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전적으로 도맡아 일하게 됐다. 사실 20대 때는 한 번도 농사를 업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심지어 ‘그럴 돈이 있으면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농사일을 하다 보니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완전히 다른 일인데, 힘들지는 않았나.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다 초반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힘들었다. 많은 사람이 귀농, 귀촌을 꿈꾸지만 정작 돈을 버는 경우는 많지 않다. 농사는 3~4년 차에 본격적으로 생산량이 나와야 틀이 잡힌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거쳤고, 2017년에 이르러서야 오미자 5t, 2018년에는 9.3t을 수확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생산량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생산과 마찬가지로 가공해 판매하는 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가공법을 터득하는 데 3년가량 걸렸다. 지난해에만 국가에서 제공하는 ‘가공컨설팅’을 15번이나 받았다. 나이가 비교적 젊지만 투자를 한번 잘못했다 망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한 발 한 발 찬찬히 걸어왔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창업농’에 선정됐다고.

“지난해 1기 1200명을 모집했는데 지원해 뽑혔다. 2025년이 되면 만 39세 농업인이 3700명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은 5년 뒤 청년 농업인이 전체 농업인의 1%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정부에서 시행하는 사업이다. 5년간 매년 1200명씩 6000명을 지원해준다. 선정된 사람은 월 100만 원씩 3년간 지원받는 대신 농업교육 160시간 이수, 보고서 작성, 영농일지 작성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에서 이런 지원 사업을 하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농사는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에게 지원비와 교육은 매우 가치 있다.”


농사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인가.

“사실 초창기에는 생산보다 판매가 어려웠다. 경기도 사람들은 오미자를 잘 모르고, 오미자청을 즐겨 먹지 않는다. 그래서 홍보가 쉽지 않았다. 연천에서 1년에 4차례 열리는 박람회에 매번 참석해 오미자청 시음 홍보행사를 했다. 지난해 어떤 분이 축제에 와서 먹어보고 ‘원래 생과를 사 직접 청을 담가 먹었는데 이 집 오미자청은 위생적으로 깨끗해 믿고 먹어도 되겠다’며 그 자리에서 오미자청을 사갔다. 그때 정말 뭉클했다.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어떻게 가공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는데 알아봐주는 사람이 생겨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창업 6년 차, 올해가 분기점


정 대표는 올해 들어 오미자 농사에 어느 정도 완성된 기반을 갖추게 됐다. 지난해에는 오고농원 법인을 설립하면서 농장 인근에 제조공장도 따로 마련했다. 우수 품질을 인증받고자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연천군 우수 농특산물 인증 통합 상표인 ‘남토북수’ 사용 권한도 부여받았고,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우수농산물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 인증도 받았다. 그는 “올해가 본격적으로 생산과 판매를 늘릴 때”라고 말했다.


창농 초기와 비교하면 현재 매출은 어느 정도 성장했나.


“매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초창기에 비해 입소문이 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지난해에는 쉽지 않았다. 8월 폭염이 심해 A급 오미자 생과가 2t가량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절반 정도가 예년에 비해 상품가치가 낮아 안타까웠다. 다행히 오미자원액은 재작년에 비해 3배 정도 더 나와 수익이 발생했다. 올해가 분기점이다. 제조공장에 설비투자도 해 안정적으로 가공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 만큼 매출이 따라주길 바랄 뿐이다.”


4월 5~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2019 대한민국 발효문화대전’에 참가하는 이유는.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강소농(작지만 강한 농부) 교육에 갔다 마지막 일정으로 ‘코엑스 대전’에 참가했는데 뜻깊었다. 그동안 연천군에서 열리는 박람회에만 참석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규모의 박람회에 나가고 싶던 찰나에 공고를 보고 참가하게 됐다. 올해 3월 제조공장을 완비했는데 그 후 출전하는 첫 박람회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오미자를 연천의 특성화 사업으로 추진하는 게 목표다. 원래 오고농원이 연천 유일의 오미자 농장이었는데 농가가 1개 더 늘었다. 제조공장도 설립했으니 매출이 늘면 협업을 통해 물량을 맞출 수도 있을 것 같다. 연천군에서 오미자 농사를 짓겠다는 분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특성화 사업을 통해 첫 번째 영농조합법인을 세우는 것도 꿈이다. 아직 젊으니 50대까지 농사 사업을 안정적으로 확장해갈 수 있길 바란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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