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先허용 後규제’ 강조에도… 규제 문턱 여전히 남아있는 ‘샌드박스’

신동진 기자

입력 2019-03-08 03:00 수정 2019-03-08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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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코애드윈드가 오토바이 배달통에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해 만든 스마트 디디박스. 뉴코애드윈드 제공


정부 규제혁신의 상징인 ‘규제 샌드박스’ 심의에 올랐던 한 스타트업 대표가 정부의 소극적 심의 방식에 불만을 품고 심의를 보이콧했다. 이 때문에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상정된 안건에 대해 ‘보류’ 결정이 났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선허용 후규제’를 주문한 데 이어 정부 스스로 규제 필요성을 입증하자는 ‘규제입증 책임전환제’가 도입됐지만 정작 규제를 풀어야 할 공무원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 제2차 심의위원회에서는 오토바이 배달통에 디지털 광고를 도입하겠다고 ‘실증특례’를 신청한 뉴코애드윈드의 장민우 대표(사진)가 “차라리 없었던 일로 해달라”며 회의장을 나갔다. 이 스타트업은 약 4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의결 대상이 됐었다.

뉴코애드윈드는 배달대행 업체의 오토바이 배달통에 주문을 받는 즉시 음식점의 상호를 띄우는 방식으로 광고를 진행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인쇄물이나 간판 형태로 상호가 고정돼 있던 배달통을 ICT와 결합시켜 주문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상호를 변경하는 스마트 광고 플랫폼을 도입하자는 내용이었다.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배달통 광고는 지금까지 불법이었다.

정부는 전향적으로 배달통 LED 광고를 허용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광고판의 범위였다.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는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다며 뒷면 광고는 불가하다고 반대했다. 측면 광고만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뒷면이 없으면 광고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며 3면 광고를 요구했다.

장 대표는 “미국, 중국에서는 이미 3면 LED 광고를 하고 있지만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며 “오토바이의 전력 구조상 뒤차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밝게 하긴 힘들다”고 주장했다. 후면 광고가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의 의견도 제시했다.

하지만 심의에 참여한 정부 측 인사들은 “그러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냐”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오토바이는 특히 사고 위험이 큰데 뒷면 LED 광고까지 허용하면 사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업체는 사전 심의 과정에서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오토바이가 정지하거나 좌우회전용 깜빡이를 넣으면 후면 광고판에 뜨는 방식으로 설계를 보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 대표는 이번 안건이 ‘실증특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제한적으로 시범실시를 해본 뒤 문제가 생기면 보완하거나 폐기하는 게 실증특례의 취지”라며 “뚜렷한 근거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는 정부의 모습에 의욕을 잃었다”고 했다.

다른 민간위원들도 “업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실증특례를 승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의결을 미뤘다.

장 대표는 “가장 큰 규제는 법령이 아니라 공무원의 보신주의라는 생각이 든다”고 밀했다. 이미 조건부 실증특례를 받은 다른 대표도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가 모래밭에서 노는 것처럼 마음껏 혁신사업을 해보란 취지인데 부가 조건을 지키기가 까다로워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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