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영아]한국인의 ‘스위스 안락사’
서영아 논설위원
입력 2019-03-08 03:00 수정 2021-03-25 21:12
▷안락사는 크게 의사의 도움으로 약물을 주입해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인 것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 즉 존엄사로 나뉜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목적은 유사하다. 세계에서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된 곳은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미국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일부 주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외국인의 안락사를 지원하는 곳은 스위스가 유일하다. 디그니타스를 비롯해 3개 단체가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치명적 질환 없이 안락사를 선택한 호주의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그런 예다. 그는 104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고령 탓에 삶의 질이 악화됐고 행복하지 않다”며 안락사가 합법화된 스위스로 가겠다고 공표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뜨기 하루 전까지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94)가 2016년 말 “나는 안락사로 가고 싶다”는 글을 잡지에 기고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죽음을 논하는 것이 금기시돼온 일본에서 관련 논의와 연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는 지난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안락사 합법화는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것이며 고령자가 늘어나는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사회에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인류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시행돼 3만5000여 명이 연명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했고 11만4000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는 가운데 이미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해외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논의, 좀 더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필요는 없을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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