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뉴욕의 추상’에 젖다… ‘로버트 마더웰-비가’전

김민 기자

입력 2019-03-05 03:00 수정 2019-03-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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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를 보면 시기별로 흐름을 주도한 ‘종주국’이 있다. 19세기는 인상파를 태동시킨 프랑스 파리가 중심지였다면, 20세기 후반은 추상표현주의를 유행시킨 미국 뉴욕이 그 자리를 꿰찼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빌럼 더코닝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을 장식하는 작가들이 추상표현주의의 주역이다. 백남준이 ‘왜 뉴욕에서 활동하느냐’는 질문에 “뉴욕이 미술사를 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미술사의 중심지는 독일로 이동했고, 뉴욕의 화려한 시절은 역사가 됐다. 로버트 마더웰(1915∼1991)은 이 화려한 시절이 시작할 무렵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명 미술사가에게 그림을 배우며 유럽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미국에 연결해 주는 역할도 했다. 그의 ‘스페인 공화국에의 비가’ 연작과 판화 등 작품 23점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 마더웰의 개인전 ‘로버트 마더웰―비가(悲歌)’가 서울 종로구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특정 형태를 표현하지 않는, 의미가 없는 그림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는 미국의 유명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학에서 시작된 오해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진영과 대립하던 냉전 상황에서 추상화를 ‘자유’의 대표 이미지로 내세웠다. 그 가운데 폴록의 다양한 액션 페인팅 작품이 있다. 당시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정치적 선전을 위한 리얼리즘 회화가 유행했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1층 전시장에 걸린 마더웰의 그림들은 그린버그의 지적과 달리 뚜렷한 감정을 표현한다. ‘비가’ 연작은 1948년부터 시작된 마더웰의 대표작으로 이 무렵 마더웰은 첫 번째 부인 마리아와 이별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흰 대형 캔버스에 굵직하게 그어 내린 검은 선이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 속 커다란 사각형과 원형이 반복되는 것은 그가 읽은 시에서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제목에 ‘스페인’을 언급한 것은 피카소의 영향으로 보인다. 당시 피카소는 세계적 거장이었고, 스페인 내전을 비판한 ‘게르니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게르니카’는 독재로 박해받는 시민들을 돕기 위해 미국에서 순회 전시된 적도 있다. 정작 ‘비가’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스페인에 가본 적이 없던 마더웰은 그림을 그린 후 “나의 멕시코인 아내, 멕시코로의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했다. 스페인과 멕시코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할 정도로 마더웰에게 스페인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뜸했던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고 당시 뉴욕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마더웰의 개인전이 국내에서 열리는 것도 처음이다. 5월 12일까지. 무료. 02-730-1948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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