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실록한의학]〈71〉‘화병’ 현종에게 개의 담석을 권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19-03-04 03:00 수정 2019-03-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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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우황(牛黃)과 구보(狗寶), 마묵(馬墨)은 한약 중에서 가장 구하기 힘들고 값비싼 약물로 꼽힌다. 우황은 소의 담석이고 구보는 개의 담석이며 마묵은 말의 콩팥이다. 말은 쓸개가 없어 신장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우황과 구보는 예부터 기상천외의 묘약 취급을 받았다.

현종은 예송논쟁과 큰아버지 소현세자의 아들인 경안군 석견과의 정통성 시비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현종 13년 9월 계속된 스트레스로 건망증이 심해지자 ‘간 울화(鬱火)’로 진단하고 특효처방으로 구보를 권한다. 의관 이동형은 “구보는 우황과 비슷하지만 울화에 효험이 더 큽니다. 미음과 같이 먹으면 보신하는 효험이 더해집니다”라고 말했다. 현종의 아들인 숙종은 아버지보다 성격이 더 급하고 화증이 심해 구보를 아예 가루로 만들어 상복했다 한다.

쓸개의 약효에 대한 광범위한 소문 때문에 엽기적 사건도 많았다. 선조 40년 5월 1일 사간원은 좌우 포도대장에 대한 파직을 청하면서 이렇게 고했다. “경외(京外)에 소문이 요란스럽게 전파되기를, 훈련도감의 포수 등이 당을 지어 횡행하면서 사람을 죽여 쓸개를 빼내 약용으로 삼는다.”

한의학에 있어 쓸개는 힘을 상징한다. 담즙은 응축하면 검은색을 띠지만 희석하면 노란색으로 바뀐다. 대변이 황금색을 띠는 것은 음식물이 십이지장을 통과해 삭히는 과정에서 쓸개즙과 섞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쓸개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이 쓸개즙의 삭히는 힘 때문이다. 체내의 특정 부위에 노폐물이 쌓여 혈액의 흐름이 정체되는 현상을 ‘담음(痰飮) 어혈(瘀血)’이라고 하는데, 예부터 쓸개즙은 담음과 어혈의 치료에 좋은 효과가 있었다.

보신의 측면에서 보면 쓸개는 몸에 ‘봄 같은 생기’를 불어넣는다. 청나라 후기 약물학 서적인 ‘본경소증’에는 “쓸개는 양(陽) 중에선 소양으로 양기의 맨 앞이다. 이는 마치 봄에 처음 나오는 기(氣)와 같아서 변화를 가장 먼저 퍼뜨리며 용솟음쳐 나오는 기운을 말한다”고 쓰여 있다.

동남아에서 코브라 뱀의 쓸개를 먹는 보신관광이 한때 유행한 것도, 곰쓸개가 보신의 특효약으로 암암리에 거래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쓸개에 얽힌 고사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처절한 분노 속에서도 쓸개는 화를 진정시켜 평정심을 유지하는 효험이 크다는 고사다. 한의학적으로는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관이란 뜻으로, 몸의 생기와 균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장기가 바로 쓸개라는 얘기다.

건강의 적신호인 담석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식사를 거르는 것이다. 위의 운동과 강력한 산의 작용으로 암죽 형태가 된 음식물이 십이지장을 지날 때쯤, 쓸개는 담관을 통해 담즙을 내려보낸다. 담관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음식물이 통과하면 열리는데 식사를 거르면 담즙이 담관 안에 농축된다. 담즙은 간에서 500mL 이상 생산되는데 담낭의 저장능력(30mL)을 넘어가면 담낭 안에서 농축돼 결석이 되기 쉽다. 불규칙한 식사와 불규칙한 생활은 만병의 근원이다. 어떻게 보면 규칙적인 섭생이 우황, 구보, 마묵보다 훨씬 좋은 만병통치약일지 모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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