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 라이프 추구하는 레깅스족 “나는 쫄쫄이 입고 출근한다”

신희철 기자

입력 2019-03-02 03:00 수정 2019-03-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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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대세 ‘애슬레저 룩’

회사원 임모 씨(34·여)는 ‘쫄쫄이’라고도 불리는 ‘레깅스’를 즐겨 입는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접하게 됐지만 이제 그에겐 단순한 ‘운동복’이 아니다. 친구를 만날 때뿐만 아니라 회사에 출근할 때도 종종 레깅스를 입는다. 편한 데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멋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씨는 주로 레깅스 위에 기장이 긴 재킷을 걸쳐 엉덩이를 가리고 독특한 양말과 운동화 또는 부츠, 액세서리 등을 믹스 매치한다. 임 씨는 “출근 복장으로 곧바로 운동을 할 수 있고 모임에도 나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뷰티 회사에 근무하는 김태중 씨(33)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레깅스를 입는다. 요가 수업에서 레깅스를 입기 시작했는데 신축성이 좋아 움직이기 편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레깅스만 입으면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레깅스 위에 운동복 반바지를 입고 상의로는 후드 티나 카디건을 입는다.

레깅스 등을 활용한 이른바 ‘애슬레저 룩(Athleisure Look)’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애슬레저는 운동(athletic)과 여가(leisure)를 합친 용어다. 일상생활과 운동을 함께 하면서 스타일까지 연출할 수 있어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운동 마니아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레깅스 외에 트레이닝 바지, 조거 팬츠(발목 부분을 밴드로 처리한 바지) 등을 입고 다양한 상의와 액세서리, 가방 등을 더해 애슬레저 룩을 표현할 수 있다.

애슬레저 상품의 주 소비층은 20, 30대로 추정되지만 최근 10대와 40대의 애슬레저 룩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고생 박민주 양(18)은 교복 치마 안에 레깅스나 트레이닝 바지를 즐겨 입는다. 박 양은 독특한 무늬나 로고가 박힌 레깅스·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하교 후 학원에 간다. 40대 직장인 한모 씨(41)는 애슬레저 룩을 가벼운 모임과 회사 출장 시에도 활용한다. 한 씨가 꽂힌 아이템은 ‘기능성 면바지’와 ‘바람막이’다. 기능성 면바지에 티셔츠와 재킷을 곁들이면 퇴근 후 곧바로 운동을 할 수 있다.

애슬레저 룩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가 강조하던 사회적 성공보다 자신의 만족, 개성, 건강 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수민 삼성패션연구소 그룹장은 “로맨틱하거나 우아하진 않지만 ‘내가 편하면 그만’이라는 쿨(Cool)한 의식이 애슬레저 룩 인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유통업체들은 디자인과 실용성을 갖춘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소비자 체험 마케팅을 늘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15년 10개에 불과했던 애슬레저 브랜드를 지난해 말 24개까지 늘렸다. 올해 1월엔 인천터미널점에서 국내 백화점 업계 최초로 매장 내에 운동 공간까지 마련했다. 이를 위해 애슬레저 편집숍 ‘피트니스 스퀘어’를 웬만한 대형 매장 2개를 합친 규모(363m²)로 만들었다.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브랜드 매장을 유치하던 업계 관행을 깨뜨린 시도다.

2016년 국내에 상륙한 캐나다 프리미엄 브랜드 룰루레몬은 제품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소비자에게 무료 피트니스 강습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송파구 잠실동 등에 위치한 매장에 강사를 두고 매달 요가·필라테스 등의 수업 회원을 모집한다.

버버리는 후드 트레이닝 세트를 꾸준히 내놓고 있고, 펜디·발렌시아가·지방시도 매년 패션쇼에서 애슬레저 룩을 선보이고 있다.

가방 신발 모자 양말 등 애슬레저 룩을 돋보이게 하는 아이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질스튜어트스포츠는 가방에 공을 들였다. 의류를 돋보이게 할 만한 깔끔한 디자인에다 9개가량의 포켓을 달아 넉넉한 수납을 강조했다. 휠라는 복고풍에 투박한 디자인으로 남다른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어글리 슈즈’를 내놨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애슬레저 룩 상품군의 시장 규모는 2009년 5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2조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2020년엔 3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등산복으로 대표되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지난해 4조7500억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애슬레저 시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눈치를 보는 일에 익숙했던 한국인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위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은 의무와 책임,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며 패션 역시 암묵적 틀에 갇혀 있었다”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패션이 확산되면 사고의 틀도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비주류였던 힙합 문화가 주류가 되고,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처럼 남보다 내가 더 중요해진 가치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애슬레저 패션이 인기를 끌면서 적절한 애슬레저 룩 코디법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애슬레저 룩 코디법을 정리해 봤다.

우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 써선 안 된다. ‘얼마만큼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가’가 애슬레저 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레깅스나 조거 팬츠처럼 활동성이 뛰어난 의류와 함께 캐주얼한 일상 의류를 믹스 매치하는 게 좋다. 예컨대 스포츠 브라를 입고 가죽 재킷 혹은 청재킷을 걸칠 수 있다.

남자들의 경우 통이 너무 큰 바지보단 슬림한 조거 팬츠나 기능성 바지를 입는 게 낫다. 유예슬 룰루레몬코리아 매니저는 “레이어링(겹쳐 입기)도 애슬레저 룩의 일부”라면서 “레깅스를 입고 긴 셔츠를 입거나 간절기에는 긴 스웨터 등으로 코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가 브라탑을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 최근 요가 브라탑이 기능성으로 편리하게 나온 만큼 속옷 대신 입는 사람이 많다. 정세련 롯데백화점 피트니스편집숍 바이어는 “브라탑을 입으면 요가 클래스에 들어가기 전 상의만 벗어도 바로 요가를 할 수 있다”면서 “요가 수업 후에는 요가복에 니트나 아우터 정도만 걸치고 집에 가도 어색함이 없다”고 말했다.

좀 더 과감한 스타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조거 팬츠에 힐을 신을 수도 있다. 굵은 목걸이를 맨투맨 티 위에 입어 포인트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롱 원피스에 오버핏 후드집업점퍼나 스니커즈를 더하는 스타일도 있다. 크로스 백이나 엉덩이에 매는 작은 가방으로 애슬레저 룩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카티아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형광기가 있는 레몬옐로, 코럴핑크, 오렌지레드 등의 컬러를 포인트로 두고 물 빠진 느낌의 그레이, 베이지, 스카이블루 컬러와 스타일링하면 멋스러운 컬러 연출이 된다”고 말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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