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상황 속 웃기는 배우들… 개그프로인가, 연극인가

김기윤 기자

입력 2019-02-26 03:00 수정 2019-0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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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연극 ‘룸넘버 13’

“여당 의원과 야당 총재의 비서가 왜 같은 방에 있죠?”

국회에서 여야 대립이 한창이던 어느 날, 런던 웨스트민스터 호텔 6층 13번 방에서는 때아닌 ‘여야 화합’이 이뤄진다. 아무도 몰래 방을 찾은 여당 유력 의원 ‘리처드’와 야당 총재의 비서 ‘제인’이 사랑을 속삭이는 순간, 제인은 방 테라스에서 한 남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들은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불륜 관계가 알려질까 두려워 알릴 수 없는 상황.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리처드의 직속 비서 ‘조지’가 나타난다. 하지만 리처드와 제인의 배우자까지 호텔에 깜짝 등장하며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간다.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코미디 코드’가 대학로 무대에서도 흥행을 이끌고 있다. 연극 ‘룸 넘버 13’은 영국 작품을 각색했는데, 극의 내용 자체가 흥미롭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배우들의 빠른 호흡과 유머 코드가 더 돋보이는 연극이다. 객석에선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막이 내린 뒤 “이것은 개그 프로인가, 연극인가”라는 영화 ‘극한직업’의 패러디 대사가 떠오를 정도다.

뭣보다 불륜 관계와 시체의 존재를 알고 있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웃음 포인트다. 수상한 낌새를 챈 호텔 직원이나 외부 사람에게 시체가 발각되면 “과음해서 잠이 든 형”이라고 둘러댄다. 위기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방 안을 뛰어다니며 시체를 숨기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일삼는 연기는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타율이 높다.

무대 공간을 활용한 구성도 돋보인다. 공연 내내 작품의 전체적 공간은 계속 13번 방이지만, 방에 설치된 옷장이나 테라스 등의 공간도 따로 설정했다. 이런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객석에선 보이지 않아 관객의 상상에 맡겨지는데, 방 안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다만 일부 상황이 반복되고, 슬랩스틱 동작은 부자연스럽다. ‘웃음을 위한 웃음’이 예상되는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식은땀을 흩뿌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웃음으로 극복해낸다. 잘되는 작품은 롱런하는 이유가 있다. 임수형 서지은 장민수 김용호 등 출연. 오픈런.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타시티 콘텐츠룸. 전석 3만 원. 13세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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